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선반 위쪽엔 해시계와 다양한 천문 관측기구들이 터키산 카펫 위에 놓여 있고, 아래쪽에는 지구본과 산술 교과서, 찬송가 책과 줄이 끊어진 류트가 보인다. 이 물건들은 지식과 교양, 예술과 종교를 상징한다. 특히 류트는 조화를 상징하는 악기인데 줄이 끊어졌다는 건 신교와 구교, 학자와 성직자의 갈등을 암시한다. 당시 유럽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종교 갈등이 심했고 과학의 발전으로 지식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영국이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는 걸 막아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띠고 런던에 온 것이다. 사실 그림에서 가장 주목할 곳은 하단에 그려진 심하게 뒤틀린 해골이다. 이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의 상징이다.
홀바인은 권세와 지식, 교양을 두루 갖춘 대사의 초상에 이렇게 죽음의 이미지를 그려 넣음으로써 왕의 신하는 물론 최고의 권력자인 왕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부와 권력, 세속적 성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고 평화롭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담은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