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평양 여명거리 준공식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옆에서 박수를 치는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을 기분 나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주성하 기자
이날 학원을 찾은 김정은은 학원을 돌아보며 예술 공연도 관람한 뒤 운동장에 나왔다. 그런데 이런 행사에 늘 세트처럼 준비되는 체육 경기가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은 옆에 있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에게 “왜 체육 경기를 조직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당시 68세였던 황병서는 우물쭈물하다가 33세 김정은이 재차 묻자 입냄새가 날까 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중앙당과 토론을 하고 그렇게 했다”고 대답했다.
황병서는 당시 명목상 북한의 2인자였다. 그는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아경기 때 김정은의 전용기를 타고 특사 자격으로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대동하고 남쪽에 와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17년에도 김정은을 포함해 단 4명뿐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었고,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북한군 총정치국장,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고 있었다. 이런 황병서조차도 마음대로 결정할 권한이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김정은이 화를 낸 것은 비단 체육 경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군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는 황병서에 대한 불만이 쌓이고 쌓였다가 폭발했다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다음 날 군 총정치국에 대한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검열이 시작됐다. 수장인 황병서를 비롯한 총정치국 간부 몇 명은 ‘혁명화’를 시작했다.
황병서에게 주어진 혁명화는 중앙당 잡부였다. 하루 종일 넓은 중앙당 청사 구내를 빗자루로 쓸고 정원의 화초를 다듬는 등 온갖 잡일을 다 했다.
황병서가 혁명화를 시작하고 한 달쯤 뒤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그가 “당에 대한 불순한 태도 때문에 처벌됐다”고 보고했다. 이후 황병서가 처형됐다는 등의 가짜 뉴스가 난무했다.
하지만 황병서는 이듬해 2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때 북한에서 발표한 그의 직책은 노동당 1부부장이었다. 이를 기초로 통일부는 그가 조직지도부 1부부장에 올랐을 것으로 추정했지만, 실제로는 이때 황병서가 선전선동부 1부부장으로 복권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살아나는 듯했던 황병서는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 이후 모습을 감추었다. 지난해 7월쯤 황병서의 운명이 완전히 끝났다는 정보가 북한에서 입수됐다. 떵떵거리며 살던 황병서의 집안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병서의 셋째 사위다. 황병서의 배경을 등에 업고 가장 교만하게 놀던 사람 중 하나인 그가 사라진 것이다. 국토환경보호성 당위원회 간부처장으로 장인이 혁명화할 때도 무사했던 인물이다.
반년 가까이 황병서가 어떻게 됐는지 알기 위해 각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처형된 김원홍 전 국가보위상과 달리 황병서의 행방은 쉽게 파악되지 않았다.
김정은은 2인자였던 황병서나 김정은의 ‘저승사자’였던 김원홍은 내외부에 줄 충격 때문에 간부들도 모르게 조용히 없앤 것으로 보인다. 차수 왕별을 달고 김정은 앞에 무릎 꿇은 채 손으로 입을 막고 보고하는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준 황병서였지만, 토사구팽의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음 순서는 누가 될지 궁금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