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기고 - 다음 100년을 생각한다] <5>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1920년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100년 전 조상들은 지금의 일상을 짐작조차 할 수 있었을까? 시속 300km로 달리는 KTX를 타고 서울∼부산을 하루에 오가는 시대, 스마트폰으로 영화 ‘기생충’을 보고, 인공지능(AI) 가전제품이 내 말을 알아듣고 맞춤형 예측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를 말이다.
우리 조상들이 2020년 오늘의 일상을 짐작할 수 없었듯, 2120년의 미래를 우리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구와 인류는 지금보다 훨씬 위험한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과도한 에너지 사용과 기후 변화, 쓰레기와 지나친 플라스틱 사용이 만들어낼 생태계 파괴, 극단적인 종교분쟁, 핵전쟁의 공포, 경기침체와 불평등의 심화가 “지구는 22세기까지 너끈히 버텨낼 거야!”라고 장담하지 못하게 만든다.
물질로 가득 찬 오프라인 세계를 물질의 기본단위에 빗대어 ‘아톰세계(atom world)’라고 부른다면, 아톰세계는 고전 경제 패러다임이 지배한다. 무언가 생산하려면 물질을 담을 공간이 필요하고, 처리하는 데 에너지가 들며, 노동력이나 대량생산 기계설비가 필요하다. 학교에서 배웠듯이, 아톰세계에서 생산의 3요소는 토지, 자본, 노동이다.
그러나 인터넷으로 연결된 클라우드 시스템 안의 온라인 세계, ‘비트세계(bit world)’는 완전히 다른 경제 패러다임이 통용된다. 비트 단위로 저장된 데이터는 공간을 점유하지도 않고, 처리하는 속도는 무한대로 빨라졌다. 무엇보다도, 데이터를 추가적으로 처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이 거의 제로라는 놀라운 현상이 벌어진다. 우리는 그것을 ‘한계비용 제로(marginal cost zero)’라고 부른다. 그로 인해 얻는 이득은 2배, 3배가 아니라 10배, 100배의 효용이라는 점에서 아톰세계와 비트세계의 일치는 실로 혁명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것이다.
현명한 기업이라면 아톰세계의 공장을 고스란히 디지털화해서 온라인상에도 가상의 공장을 만들 것이다. 즉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을 만들어 공장의 제품 공정을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 놓는다면, AI를 이용해 저비용 고효율로 공정 과정을 관리할 수 있다. 심지어 고객이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니터링해 더 나은 서비스로 업데이트해 주거나 사용패턴에 맞는 새 제품을 추천해줄 수도 있다.
사물인터넷은 아톰 정보를 비트 정보로 바꾸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며, 3D 프린터는 비트 정보를 아톰으로 바꿔주는 마술을 부릴 것이다. 가상현실은 비트세계로 아톰세계를 모사할 것이며, 증강현실은 아톰세계 위에 비트 정보를 올려놓을 것이다. 이렇게 아톰과 비트는 서로 상호작용하고 혼재된 세상으로 이끌 것이다.
향후 10∼30년 동안 AI는 광범위하게 우리 일상으로 들어오고 비즈니스 생태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우리가 가장 고민해야 할 화두는 기술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양극화, 불평등이다. AI와 로봇 기술은 많은 일자리를 기계로 대체할 것이다. 기술의 시대는 새 일자리들을 만들어내겠지만, 그것이 사라지게 만들 일자리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그 기회가 열려 있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기회를 얻는 사람과 잃는 사람이 서로 다른 계층, 계급, 나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심각한 사회 이슈가 될 것이다. 게다가 AI는 의사결정의 주체였던 인간을 수동적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빅데이터를 분석한 AI가 하라는 대로 의사결정을 하는 존재 말이다. 마치 알파고와 이세돌의 세기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시키는 대로 바둑돌을 놓기만 했던 구글 엔지니어 아자 황처럼 말이다.
AI는 가짜와 진짜를 구별하기 힘든 사회로 이끌 것이며 우리 사회는 의견이 대립되고 갈등이 조정되지 않는 혼돈사회가 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신뢰가 중요한 사회를 요구한다. 향후 100년간 한국이 만들어야 할 사회는 ‘신뢰사회’다.
21세기 가장 중요한 화두가 무엇이 될 것인지 묻는다면, 단연 ‘기후변화’다. 전기 요금이 턱없이 싸다 보니 과도하게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너무 많은 고기들을 먹어치우고 있는 폭식 사회에서 기후 변화는 필연적이다. 기후변화대응 행동분석기관(CAT·Climate Action Tracker)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에너지 정책을 유지한다면 2100년 지구 온도는 3.1∼3.5도 올라갈 것이다. 지금보다 2도만 높아져도 생태계에 대재앙이 온다는 기후학자들의 예측이 맞는다면, 지구는 ‘시한부’에 놓였다. 훨씬 낙관적인 전망을 하더라도, 획기적인 대응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3도 가까이 올라가는 건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전망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은 생각보다 더디고, 에너지 거래에 대한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도 한국에서는 아직 시도되지 않고 있다. 특히나 지구 인구 중 40억 명이 살고 있는 도시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80%를 배출하고, 교통 체증과 환경오염 등으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지금은 AI의 시대이지만, 10년만 지나도 누구나 ‘포스트 AI’를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AI는 우리 삶 속에 스며들어 삶을 보듬을 것이며, 우리는 AI와 결합된 뇌와 몸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뇌는 인공적인 정보처리 기관인 컴퓨터, 모빌리티가 장착된 로봇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종’이라 불릴 만큼 큰 변화를 경험할 것이다.
100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양악 수술로 얼굴이 바뀐 사람이나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기를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바이오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새로운 인간들을 세상에 탄생시킬 것이다. 그들의 유전자는 편집될 수도 있고 두뇌 칩이나 입는 로봇 같은 보조장치를 사용할 수 있다. 21세기에 벌어질 가장 큰 변화는 바이오테크놀로지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것이 계급사회를 만들지 않고 사람들을 무리 짓게 하지 않으며 ‘인간성 상실의 시대’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고민하고 시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생물학적 수명은 길어졌지만 퇴직이 빨라지면서 사회적 수명은 짧아진 사회. 지식의 수명은 10년도 못 된다. 평생 학습하지 않으면 대학 전공만으로 남은 인생을 책임질 수 없는 사회에 우리는 던져졌다. 기술 변화를 성찰하면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 태도가 향후 100년간 우리 문명을 더욱 성숙하게 이끌 것이다. 기술의 영향력이 아무리 막대해져도 결국 미래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기에.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