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처 레바논서 기자회견 열어 “닛산-검찰, 처음부터 유죄 단정… 日 벗어난 지금 발언할 기회 생겨” 탈출 경로에 대해선 얘기 안해
8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지난해 말 일본 법원의 보석 조건을 어기고 레바논으로 도주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자동차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이 자리에서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밝혔다. 베이루트=AP 뉴시스
그는 자신이 초대한 미디어 관계자 약 100명 앞에 양복 차림으로 섰다. 그는 일본을 탈출한 이유에 대해 “나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면서도 어떤 경로로 탈출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대신 “나는 발언권을 빼앗긴 이후 400일 이상 이날을 기다렸다. 나는 진실을 위해 싸워 왔다”며 자신이 무죄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곤 전 회장은 또 “검찰과 닛산이 나를 처음부터 유죄라고 확정하고 밀어붙였다”며 “일본 사법제도에 의해 고통을 당했고, 나의 인권이 철저히 무시당했다”고 주장했다.
곤 전 회장은 2018년 처음 체포됐을 때부터 불구속 수사를 요구했다. 도쿄지검은 당시 금융상품거래법 위반으로 체포했다가 특수배임 혐의 등을 더해 3차례 더 체포하면서 구금 기간을 늘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12월 31일 “그가 뚜렷한 범죄 혐의가 없는 상황에서 몇 주에 걸쳐 구속당하고, 변호사 입회도 없이 조사를 받았다. 일본에서는 99% 이상의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곤 전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최고경영자(CEO)로 일했던 닛산자동차 일본인 경영진에 대해서도 공격했다. 그는 “르노와 닛산의 경영을 통합하려 했는데, 닛산 경영진은 강하게 반발했다”며 “닛산과 검찰이 결탁해 나를 무고하게 몰아냈다”고 말했다. 실제 닛산은 곤 전 회장이 전격 체포된 당일 곤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해임 절차를 밟기 위한 이사회를 즉각 소집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뉴욕타임스, 르몽드 등 주요 외신은 일본인 경영진이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분석했다.
그의 아내 카롤 씨도 7일 프랑스 일간지 르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르노와 닛산의 전쟁 및 산업적 모략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또 “(곤 전 회장 탈출) 당시 아이들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베이루트에 있었다. 누군가 내게 전화를 걸어 ‘깜짝 놀라게 해줄 일이 있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김범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