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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홈런 연설” vs “장기적 전략 없어”

입력 | 2020-01-10 03:00:00

대국민 연설 놓고 갈라진 美 여야
트럼프, 후광 등지고 연설장 입장… 영화속 영웅 연상시켜 연출 논란
민주 “대통령 군사행동 제한 결의안”




“군사보복 대신 경제 제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8일 백악관에서 참모진을 대동한 가운데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군사적 보복 대신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AP 뉴시스

8일 ‘군사 보복 대신 이란 경제 제재에 집중하겠다’는 취지의 대국민 연설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특유의 과장된 상황 연출로 구설에 올랐다.

그는 이날 오전 11시 26분 워싱턴 백악관 응접실에 해당하는 블루룸의 문을 열고 현관 로비에 마련된 단상에 등장했다. 그의 입장 때 자연광으로 보이는 강한 빛이 현관으로 가득 쏟아졌다. 그는 이 빛을 등진 채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빛 때문에 온몸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영화 속 영웅이 화려하게 등장하는 듯했다. 수백 명의 취재진이 이를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 11월 대이란 제재를 앞두고 유명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의 문구 “겨울이 오고 있다”를 패러디한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3일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은 당시 이 트윗에 맞서 “내가 당신에게 맞서겠다”는 게시물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에 관한 특검 수사 때도 이 미드를 차용한 트윗을 올렸다. 4개월 후 미중 무역전쟁의 정당성을 거론하며 “나는 ‘선택받은 사람(Chosen One)’이며 위대한 일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수니파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괴인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를 제거할 때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1년 9·11테러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할 때와 흡사한 백악관 상황실 사진을 공개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평상복 차림의 참모들 틈에 섞여 상황실 구석에 앉았던 것과 달리 그는 제복을 입은 군 수뇌부를 양옆에 둔 채 상황실 정중앙에 앉았다. 굳은 표정을 짓고 정면을 응시해 연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이날 연설에 대한 반응도 극단적으로 엇갈렸다. 대통령 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집권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란의 도전에 대한 ‘홈런’ 연설”이라고 치켜세웠다. 코리 부커 야당 민주당 상원의원은 “장기적 전략이 없다”고 비판했다. 대통령 지지자들은 ‘미국을 구했다’ ‘천사’ 같은 다소 낯 뜨거운 표현까지 사용하며 극찬했다. 비판론자들은 ‘자신을 구세주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고 혹평했다.

민주당은 이미 대통령의 군사 행동을 제한하는 결의안을 하원 표결에 부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이란과 전면전을 벌이는 상황을 미리 막겠다는 의도가 담겼다. ‘이란에 대한 적대 행위는 사전에 의회의 토론 및 표결을 거쳐야 한다. 의회 승인이 없으면 30일 안에 군사 행동을 중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공화당이 장악한 상원을 통과할지는 불투명하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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