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짧은 獨, 출산율은 높아… 일-가정 양립 가능한 환경이 핵심 2005년 최저 출산율 경험한 일본, 유럽 성공 사례 벤치마킹 안간힘 인구절벽 임박한 韓, 선택 기로에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일본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실제로 스페인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보다 연간 340시간 정도 더 많은 노동을 한다. 그러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독일의 76% 수준에 불과하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면서도 더 적은 소득을 얻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 하나는 놀랍게도 자영업을 포함해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의 비중이 독일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15∼64세 인구 중 독일의 취업자 비중은 76%지만 스페인의 취업자 비중은 63%에 불과하다. 남성의 취업률도 독일보다 낮지만, 특히 여성의 경우 독일 72%에 비해 14%포인트나 낮은 58%에 불과하다.
최근 한국의 낮은 출산율에 대한 각종 진단을 대하다 보면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것이 낮은 출산율의 원인이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렇다면 여성의 취업률이 낮은 스페인은 독일보다 높은 출산율을 보일까? 그렇지 않다. 2017년 스페인의 출산율은 1.34로 독일의 1.57보다 낮다. 유럽의 데이터를 보면 노동시간이 긴 나라가 여성의 취업률이 낮고 또 그런 나라가 출산율도 낮다. 나와 동석했던 스페인 경제학자의 예는 이제 여성들은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곳에서 엄마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지난 수년간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는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대신에 취업률을 높이고 시간당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일본보다 더 풍요로운 사회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노동자 1인당 임금도 줄어들 것이다. 기업이 자선단체가 아닌 이상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노동시간의 단축과 함께 노동생산성이 향상되고 취업률이 높아지면, 가구 전체 혹은 노동자 전체에게 돌아가는 소득은 오히려 높아진다. 그리고 그런 사회에서 젊은 부모들은 아이를 가지고 싶어 한다.
한국인은 독일인보다 연간 630시간, 일본인보다는 313시간 더 많은 노동을 한다. 반면 취업률은 10%포인트나 낮고 시간당 생산성은 독일의 51%, 일본의 82%에 불과하다. 출산율 역시 이 두 나라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 유럽과 일본의 경험은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이 올바른 선택임을 분명히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