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베스트셀러]1994년 종합베스트셀러 10위 (교보문고 기준)
◇퇴마록/이우혁 지음/전 19권·엘릭시르
1990년대, PC통신의 시대가 열렸다.
PC통신의 시대를 이끈 그 시절의 신인류는 귀가하면 모뎀이 장착된 컴퓨터를 켜고는 띠띠띠띠 하는 버튼음과 뚜우뚜우 하는 전화 연결음이 어서 지나간 뒤 푸른색 화면이 나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곤 했다.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모니터 저편 사람들과 취향을 공유하고 정보를 교환하다니, 고민을 주고받을 수도 있고 그중 누군가는 친구나 애인이 되기도 한다니, 그야말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각종 동호회에선 여러 종류의 창작 게시판도 운영됐다. ‘퇴마록’의 저자 이우혁은 PC통신이 낳은 가장 유명한 스타 작가일 것이다.
이우혁 작가는 1993년 하이텔에 ‘퇴마록’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귀신 혹은 악마를 쫓아낸다는 의미의 퇴마(退魔)를 두고 누군가는 가톨릭 쪽에서 통용돼온 구마(驅魔)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사실 ‘퇴마록’은 영화 ‘엑소시스트’로 대변되는 서구의 전통 구마 장르와는 다른 면이 있었다.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기독교적 악마와 가톨릭 신부 혹은 선량한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 밀교를 포함한 여러 종교와 각종 무예 및 주술 등으로 수련한 네 인물이 초자연적인 귀신들과 싸우는 과정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 작가가 쓴 한국형 판타지 소설이 스타트라인을 끊은 것이다.
‘퇴마록’은 1994년에 책으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첫 시리즈 ‘국내편’에 이어 ‘세계편’ ‘혼세편’ ‘말세편’이 약 8년에 걸쳐 연이어 출간됐고, 총 권수는 19권에 이르며 누적 판매량은 1000만 부에 육박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한 가정에 적어도 퇴마록 한 권 이상은 보유한 적이 있다는 의미다. 인기 소설이 대개 그렇듯 ‘퇴마록’ 역시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소설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퇴마록’에 대한 문학적인 평가도 전무하다시피 했다. 장르가 생소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선과 악이 뚜렷하고 동시대의 문제성이 희박한 소설은 문학보다는 기담(奇談)에 가까울 테니 말이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전화선을 이용한 PC통신은 과거 속 신문물이 됐고 당시의 신인류는 이제 기성세대로 살아가고 있다. 하이텔이니 나우누리 같은 이름은 추억거리가 됐지만 모르는 사람들과의 통신에 대한 욕망은 이후 인터넷의 각종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등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김금희 작가의 소설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의 한 문장을 인용한다면 ‘그건(통신에 대한 욕망은) 망원경으로 별을 관찰하는 것과 같’으니까, ‘별이 거기 있고 가까이 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보고 싶어 하니까’.
조해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