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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하메네이도 살인자” 시위… 사면초가 정부, 美와 협상 가능성

입력 | 2020-01-13 03:00:00

이란, 여객기 격추 사과… 정세 급변




솔레이마니 前사령관 추도식의 이란군 최고지휘부 9일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이란 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오른쪽)이 3일 미군의 드론 공습으로 숨진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의 추도식에 참가해 무릎을 꿇고 추모하고 있다. 그는 11일 혁명수비대가 8일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군용기로 오인해 미사일로 격추했음을 인정하고 “격추 소식을 듣고 죽고 싶었다. 전적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테헤란=AP 뉴시스

11일 이란이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격추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이란 정부와 군부가 궁지에 몰렸다. 미군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거한 사건을 계기로 반미(反美) 투쟁 여론이 높았지만 이 사건으로 응집력이 크게 약해졌다. 이로 인해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미르 알리 하지자데 이란 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은 이날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실을 인정한 뒤 “우리 실수로 여객기가 격추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죽고 싶었다. 어떤 결정이 내려져도 달게 받겠다”며 처벌을 피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란은 줄곧 기체 결함을 주장하며 서방의 피격 의혹을 부인해 왔다. 하지만 각국 정부 및 주요 외신이 이란의 격추 증거를 속속 제시하자 더 이상 부인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자데 사령관은 지난해 6월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서 미국 무인기를 자체 개발한 대공 미사일로 격추하면서 반미 선봉으로 부상했다. 그런 그가 공개적으로 작전 실패를 시인한 것도 비판 여론이 상당함을 인식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란 내 반(反)혁명수비대 세력은 희생자 176명 가운데 이란 국민(82명)이 절반 가까이 되는 점 등을 들어 “반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고 경위를 엄중히 조사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11, 12일 양일간 테헤란, 이스파한 등 주요 대도시에서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반정부 집회를 열고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도 살인자”라고 외쳤다. ‘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은 중동의 반미 시위대가 외치는 ‘미국에 죽음을’ 구호에 빗댄 말이다.

특히 신정일치 국가인 이란에서 최고지도자의 사임 요구는 극히 이례적이어서 반정부 시위의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야당 지도자는 하메네이 사퇴를 거론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민항기 격추 사실을 숨긴 것도 모자라 비행기 잔해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등 조직적 은폐에 나섰다고 분노한다. 시위대 일부는 솔레이마니의 사진까지 찢었다. 해당 집회에 참여한 롭 매케어 이란 주재 영국대사도 체포됐다가 3시간 만에 석방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를 놓치지 않고 이란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 및 정권 흔들기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트위터에 “이란 지도자는 시위대와 위대한 이란 사람들을 죽이지 말라. 미국이 지켜보고 있다”고 썼다. 하루 전에는 영어와 페르시아어로 “시위대의 용기에 고무됐다. 취임 후부터 당신들과 함께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란 트윗도 게재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제거한 3일 예멘에 있던 쿠드스군의 재무 책임자 압둘 레자 샬라이 사령관도 제거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고 전했다.

내우외환에 직면한 이란이 결국 미국과의 핵 협상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인터넷매체 액시오스 인터뷰에서 “이란과 마주 앉아 협상에 돌입할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다”고 말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8명의 이란 최고위 관료 및 철강, 알루미늄, 구리 제조업체 등 17개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하는 추가 제재안을 발표했다. 특히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과 정부도 제재할 수 있는 ‘세컨더리 제재’ 권한을 재무부에 부여했다.

미국이 세컨더리 제재에 돌입하면 이미 단절된 것이나 다름없는 한국과 이란의 경제 교류 재개 기대감이 완전히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추가 제재가 이어지면 대이란 제재 완화 등을 기대하며 현지 기반을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이란 진출 한국 기업에 적잖은 타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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