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이해인 수녀 “이태석 신부님은 고통을 이겨내고 삶의 품격 회복시킨 분”

입력 | 2020-01-13 03:00:00

14일 李신부 선종 10주기 앞두고… 부산 해인글방서 만난 이해인 수녀
최근 개봉 ‘울지마 톤즈 2’ 관람
“딱 한번 만났지만 닮고 싶었던 분… 남을 위해 희생한 콜베 신부 떠올려
가장 인간적인 것은 가장 거룩한 것… 겸손한 죄인, 교만한 의인보다 좋아”




해인글방 내 작은 공간의 평상심(平常心)이라는 글은 이해인 수녀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2016년 작고한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특강 요청을 받았지만 할 수 없어 미안하다며 대신 써 보낸 것이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그날은 보름달이 떴나 보다.

이해인 수녀(75)를 만난 다음 날인 10일 오전 눈을 뜨니 휴대전화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 “간밤엔 둥근 보름달을 보며 태석 신부님의 환히 웃는 얼굴도 떠올려봤어요. 고통 속에서도 웃을 수 있던 (그분) 4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나 많은 이의 가슴속에 이웃사랑의 본보기. 보름달로 떠 있는 분!”

수도자이자 시인의 길을 걷고 있는 그는 간밤 보름달에서 2010년 선종(善終)한 이태석 신부를 떠올린 듯하다. 전날 부산의 한 극장에서 영화 ‘울지마 톤즈 2―슈크란 바바’를 함께 관람했다. 다시 광안리 해변에서 차를 마시고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원 내의 해인글방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슈크란 바바는 수단의 한 부족 언어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란 뜻이다.

―14일, 벌써 이태석 신부 선종 10주기네요.

“행사에서 시를 낭송하기도 했는데 11일 열린 음악회에는 여건이 안 돼 영상 메시지를 보냈어요.”

―영화 보는 중 기도하고 눈물도 여러 차례 흘렸습니다.

“48세, 너무 젊죠. 10년은 더 사셨어야 하는데….”

―왜 하느님은 그를 그리 빨리 데려가셨을까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 보면서 신부님이 하느님께서 주신 여러 재능을 아낌없이 불꽃처럼 태우고 가셨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그 많은 일을 하면서도 그토록 겸손할 수 있다는 게 다시 봐도 놀라워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누군가를 대신해 목숨을 바친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도 떠올랐습니다. 모르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게 정말 용기 있는 삶입니다.”

남수단 톤즈에서 진료하고 있는 생전의 이태석 신부. 무비스트 제공


―이태석 신부와 인연은 어떻습니까.

“태석 신부님이 생전 병 치료를 위해 한국에 왔을 때 만난 적이 있어요. 한 번 만났지만 닮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면 ‘Everything Is Good’이 유언이라고 합니다. 고통을 이겨내고 삶의 품격을 회복시킨 분입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죽음의 문제에 직면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늘 갈망하라, 늘 우직하라), 그 말이 떠오르네요. 잡스는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도 자신과 주변을 위한 준비를 하나씩 해 나갔다고 합니다. 인생의 끝에는 이별이 있기 마련인데 무엇보다 자신이 추구해온 삶의 본질에 충실해야 합니다.”

해인글방은 서가의 책뿐 아니라 사진과 편지, 기념품 등으로 ‘해인(海仁·바다 같은 어진 마음이란 뜻의 필명)의 향기’가 가득하다. 젊은 시절 그의 사진을 보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올리비아 허시를 닮았다고 하자 “그런 소리 좀 들었죠”라는 대꾸와 웃음이 돌아왔다. 그는 “영화 ‘두 교황’도 봤는데 베네딕토 16세 역의 앤서니 홉킨스가 어찌나 연기를 잘하는지 몰라요. 팬레터라도 보내야겠어요”라고 했다.

―그 영화는 어떤 점이 좋았나요.

“무엇보다 두 분 교황의 삶 자체가 주는 무게와 감동 때문입니다. 거의 매 순간 필요했던 그분들의 인내와 절제를 느끼게 됩니다. 두 배우의 연기도 너무 훌륭합니다.”

―수도자이자 시인의 삶도 쉽지 않습니다.

“수도원에 오기 전에는 넓게, 모든 사람의 애인이 되고 싶었어요. 수도 생활을 하고 글을 쓰고 나서는 하느님과 세상을 잇는 ‘러브레터’로 살려고 했습니다. 나비, 민들레의 솜털은 어떨까…(웃음), 어느 정도 이뤘으면 다행이죠.”

―시와 좋은 말씀으로 이미 큰 위안을 주고 있습니다.

“숭산 스님의 말이 있습니다. ‘감자가 물에서 이리저리 서로 부딪치며 때가 벗겨지는 것처럼 도(道)도 그렇다’고. 나이가 들수록 영적인 고민이 많아 문제입니다. 교만한 의인보다 세상 속에서 겸손한 죄인이 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거룩한 것과 통한다고 합니다.”

―요즘 어떤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차별 없는 사랑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해요. 사람이라 살다 보면 구분 또는 선택이란 걸 하게 됩니다. 태석 신부님은 한센병 환자를 찾아가고 발가락이 제대로 없는 이들을 위한 맞춤 신발을 만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거나 멸시받는 이들과 함께하셨고요. 예수님의 그 마음을 닮고, 또 닮아야 합니다.”

부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