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관 담화서 ‘통미봉남’ 강화
그러나 북한은 11일 김계관 외무상 고문 명의의 담화에서 청와대를 향해 “끼어드는 것은 주제넘는 일”이라고 했다. ‘북-미가 직접 해결할 테니 한국은 빠지라’는 것. 북한이 2020년 외교 전략을 읽을 수 있는 새해 첫 메시지에서 문 대통령의 신년사 제안에 일절 호응하지 않으면서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북 구상을 다시 한번 밝힐 예정이다.
○ 文, 손 내밀었지만 北 “주제넘은 일”
청와대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북-미 관계는 앞바퀴, 남북 관계는 뒷바퀴’라며 상호 의존적 관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은 청와대를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여기에 북한은 문 대통령이 제안했던 남북 협력 대상을 일절 거론하지 않는 것은 물론 문 대통령도 언급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김계관의 담화에 공식 반응을 자제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북한이 화답은커녕 철저한 무시 전략으로 나오자 마땅한 대응을 내놓기 쉽지 않은 것. 여권 관계자는 “국내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대북 제재라는 현실적인 난관까지 감수하고 문 대통령이 손을 내밀었지만 북한이 전혀 응하지 않은 것에 대해 불편한 기류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런 북한의 반응에 대해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은 청와대가 좀 더 통 크게 협력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동안의 이벤트성 협력에 질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간 평창 겨울올림픽 선수단 파견, 개성연락사무소 개설 등에 협조했지만 북한이 기대한 것만큼을 한국에서 얻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 정상 간 ‘친분’ 인정했지만 대화 문턱 높인 北
그 대신 북한은 백악관을 향해 ‘제재 완화 등 요구사항을 받으라’며 압박의 강도를 높였다. 김계관은 “조미(북-미) 사이에 다시 대화가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 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다만 북한은 “세상이 다 인정하는 바”라며 북-미 정상 간 친분은 여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친분관계를 바탕으로 우리가 다시 대화에 복귀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갖는 것은 멍청한 생각”이라고 했다. 이런 북한의 태도는 강화된 ‘통미봉남’을 천명한 상황에서 백악관과의 채널만큼은 단절하지 않고 열어두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를 받았다면서 북-미 채널이 공고하다는 점도 과시했다.
이에 대해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 대선이 있는 11월까지 북한이 압박과 긴장을 고조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여권 일각에서는 연말연초 ‘새 전략무기’ 등을 과시했던 북한이 이번에는 관련 언급을 하지 않은 점을 두고 “고강도 도발 유지에서 선회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