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선 차이잉원 압승]
反中 바람 탄 차이잉원, 대만 총통 재선 11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한 차이잉원 총통이 당선 확정 후 집권 민진당 당사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왼쪽은 부총통으로 함께 당선된 라이칭더 전 행정원장. 차이 총통은 직전 기자회견에서 “대만인이 이번 선거로 일국양제를 거부했다”고 외쳤다. 반면 중국은 미국, 일본, 영국 등이 차이 총통의 재선을 축하하자 12일 “내정 간섭”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타이베이=AP 뉴시스
대만 중앙선거위원회에 따르면 반중 성향 집권 민진당 소속 차이 총통은 이날 817만231표(57.1%)를 얻어 552만2119표(38.6%)에 그친 친중 성향의 야당 국민당 후보 한궈위(韓國瑜) 가오슝(高雄) 시장을 눌렀다. 이날 함께 진행된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총 113석)에서도 민진당은 과반 유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과반(61석) 확보에 성공했다.
시진핑 지도부는 지난해 1월 ‘대만을 일국양제 방식으로 통일하겠다’고 천명한 뒤 일국양제를 시행 중인 홍콩을 대만의 미래 모델로 제시하려 했다. 하지만 중국이 내정(內政)이라고 규정해온 홍콩과 대만에서 잇달아 중국의 통치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환호하는 대만 2030 11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집권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을 지지하는 반중 성향의 젊은이들이 차이 총통의 승리가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지난해 6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홍콩 반정부 시위와 중국 당국의 강경 진압 등으로 비슷한 일이 대만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대만 젊은이들이 대거 차이 총통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타이베이=AP 뉴시스
차이 총통은 “대만해협의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며 대만 독립을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면서도 “중국과 대화, 협상하기를 희망하지만 중국이 대만의 존재를 인정하고 평화적이고 대등한 방식이어야만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 외교부와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은 차이 총통 당선 확정 뒤인 11일 밤 “평화통일과 일국양제 기본 방침을 견지한다. 대만 독립과 분열 시도를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혀 양안 갈등 격화를 예고했다. 중국 관영 환추시보는 “차이 총통이 대만을 (일국양제의)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간다면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왕신셴(王信賢) 타이베이 국립정치대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본보 인터뷰에서 “베이징의 통치와 일국양제 방식의 통일은 거부한다는 것이 현재 대만인들의 공통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정치 지형 변화를 간파하지 못한 시진핑 지도부가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와 외교적 고립 등 강경책을 지속하면서 차이 총통의 역전승을 돕는 역효과가 났다는 것이다.
○ 대만 2030 “우린 중국인 아니다”
6개월여 만에 전세를 완전히 뒤집은 원인은 홍콩 시위의 주축인 ‘앵그리 영맨’에게 공감하고 중국에 반감을 가진 대만 2030들이 대거 투표장으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11일 대만 곳곳에서는 투표를 하기 위해 해외에서 귀국한 2030 젊은층의 투표 열기가 목격됐다. 타이베이 기차역은 고향으로 돌아가 투표하려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타이베이 한 카페에서는 대만과 홍콩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개표 방송을 지켜봤다. 정차오링 씨(25·여)는 한국에서 유학하다가 투표를 하기 위해 타이베이로 돌아왔다. 그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억압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 민진당 당사 앞에서 만난 뤼(呂·21·여)모 씨는 올해 처음 투표했다. 그는 “대만은 주권을 가진 국가이고 일국양제에 동의하지 않아 차이 총통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의 차이 총통 선거캠프 앞에서 만난 량자언(梁嘉恩·19) 군은 “투표권은 없지만 민주주의를 경험하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훙야오난(洪耀南) 대만 세대싱크탱크재단 집행위원장은 “대만의 40대 이상은 자신이 중국인인지 대만인인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있었다. 그래서 대만이 중국과 통일해야 하느냐, 독립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논쟁이 계속됐다”며 “하지만 40세 미만 세대는 대만은 주권이 독립된 국가라는 데 이견이 없다”고 분석했다. 대만을 압박하는 중국에 대한 반감과 불신이 높은 젊은층은 홍콩 시위를 계기로 대만도 홍콩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고 민진당이 이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했다. 망국감(亡國感)이라는 유행어까지 등장했다.
홍콩 젊은이들도 자신을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크게 늘고 있다. 이런 세대 정체성의 변화가 중국의 일국양제 구상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타이베이=윤완준 zeitung@donga.com·권오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