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 잘못된 행동을 지적할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가 지하철 좌석에 자꾸 신발을 신은 채 올라선다. 엄마가 몇 번이나 주의를 줬지만 소용이 없다. 엄마는 아이를 붙잡아 앉히며 겁을 준다. “너 저 아저씨가 뭐라 한다, 아저씨, 얘 좀 혼내주세요.” 아이는 잠깐 긴장한 듯 똑바로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아무도 자기한테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혼내는 아저씨 없는데?” 하고는 다시 지하철 좌석에 올라섰다.
아이에게 어떤 행동을 못하게 할 때 우리는 종종 주변 사람을 이용한다. “저 할머니가 쳐다보시잖아. 넌 이제 혼났다!” “너 그렇게 울면 의사선생님이 ‘왕주사’ 주신다!” “너 그렇게 행동하면 친구들이 안 좋아해” “그런 학생은 선생님이 싫어해”. 그런데 어떤 장소나 상황에서 행동을 자제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그 원칙은 나의 기분 상태, 선호도, 선택과 관계가 없다. 또 다른 사람의 그것들과도 관계가 없다.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쳐다보든 쳐다보지 않든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가르칠 때는 “원래 원칙이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네가 하지 말아야 하는 거야”라고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자신’이 배운 것을,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자신’이 행하게 된다. 배우고 행하는 주체가 아이 자신이 돼야 한다. 이것은 아이의 자기 주도성을 키우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이에 반해 “그렇게 행동하면 사람들이 너를 좋아하겠어?”는 나의 행동의 주도권이 타인에게 있는 것이다. 도덕성 발달 단계에서도 가장 하위 단계다.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은 다른 사람과 상관없이 언제나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 자신이 안 해야 한다고 느껴서,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이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주변 사람을 운운하는 것은 즉각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옳고 그름의 원칙을 분명하게 가르치기는 어렵다. 굉장히 핵심에서 벗어난 말이기 때문이다. 사례와 같은 상황에서는 아이에게 “내려오는 거야”라고 분명하게 말해줘야 한다. 그래도 아이가 계속 올라가면 “여기는 신발을 신고 올라가면 안 되는 거야. 자꾸 올라가고 싶으면 신발을 벗자”라고 하고 아이 신발을 벗겨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너 그러면 저 아저씨한테 혼나” 또는 “이런 행동은 사람들이 싫어해”라고 하면 아이 행동의 주체는 다른 사람들이 되기 때문에 혼내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없으면, 아이는 그 행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 혼날까 봐, 혹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 그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이 배워서, 자신이 생각해서,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기 주도성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