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서 주연 맡은 배해선
극에서 100세 노인 ‘알란’ 역을 맡은 배해선이 양로원 창문을 넘어 탈출하는 장면. 그는 “현자 같은 노인이 조직폭력배가 협박하자 ‘100살이라 날 죽이려면 빨리 죽이는 게 좋다’며 던지는 위트가 주인공의 매력”이라고 했다. 연극열전 제공
입을 떼는 순간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것만 같은 100세 꼰대 할아버지. 정작 그의 입에서는 “가자”는 말이 제일 많이 튀어나온다. 그냥 동네 마실 가자는 수준이 아니다. 명확한 목적지도 없다. 젊은이들이 ‘이래도 되나’ 싶을 때면 그가 먼저 “일단 고!”를 외친다.
고향 스웨덴을 떠나 세계를 누비며 폭탄이 터지든, 사람이 죽든 “살아보니 뭐 그럴 수 있다”며 위로를 건네는 이 노인. ‘연기 장인(匠人)’ 배해선(46)이 연극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초월적 여유와 위트로 무장한 100세 알란 역을 맡았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9일 만난 배해선은 “‘어디 네가 해봐라’ 대신 ‘가자’를 외치는 주인공의 말에 이상하게 꽂혀버렸다”며 “무심한 듯 진심이 담긴 대사에 저도 위로받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차기작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긴 연극 ‘창문 넘어…’다. 100세 생일을 앞두고 양로원 창문을 넘으며 시작된 알란의 여정과 그가 태어난 1905년 이후 행적을 교차해 보여준다. 스페인 내전, 미국 핵개발 등 근현대사의 장면에 등장하고 처칠, 드골, 마오쩌둥, 김일성과도 만난다.
연극 배우 배해선. 연극열전 제공
“작품이 실험적이었어요. 저보다 경험이 풍부한 선배가 알란을 연기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 같았죠. ‘진짜 연기’로 안 보일까 봐 두려웠거든요.”
장고 끝에 “늘 새로운 것에 끌린다”는 도전정신이 걱정을 눌렀다. 배우 오용과 더블캐스팅으로 무대에 서며 100세 할아버지와 나이, 성별 등 모든 게 다르지만 인물의 진짜 이야기에 집중하면 된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 달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 4만∼5만5000원. 12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