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그러다가 사람은 위기를 경험한다. 때로는 자신의 질병이나 주변 사람의 죽음으로 위기가 오기도 하고, 사업 실패나 실직,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에서 위기를 경험하기도 한다.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잘나가는 사람이든 못나가는 사람이든 ‘얼마 동안은 운전석에서 쫓겨나는’ 경험을 한다. 그런데 이 위기를 어떻게 경험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어떤 사람은 위기 이후에도 전반부 인생을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후반부로 접어들게 된다. 위기를 통해 삶의 후반부로 건너가게 되는 사람들은 착한 자녀, 성실한 학생, 충성스러운 직원으로 전반부에서 노력하며 살아왔던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갖게 된다. 그러고는 자신이 전반부에 만든 컨테이너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고민한다. 후반부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전반부에 자신이 믿고 따랐던 삶의 문법이 더 이상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새로운 문법으로 살아가게 된다. 즉, 이들은 전반부에서 배웠던 것을 더 강화하는 학습이 아니라 이를 잊어버리고(unlearn) 새로운 학습을 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로어 신부는 달라이 라마의 “법을 잘 배우고 잘 지켜라. 그래야 그것을 제대로 어길 줄 알게 된다”는 말을 인용한다. 위기를 겪고도 후반부 인생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왜 나에게 이런 위기가 발생해야 하는지 한탄만 하고 자신이 전반부에 있던 안전지대를 벗어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장벽을 쌓는다. 어떤 사람은 60대에도 전반부를 살지만, 10대에도 후반부를 사는 사람이 있다. 후반부란 나이와 상관없이 심리적으로 성숙하고 성인이 되는 과정이다. 로어의 주장이 직장인의 삶과 무슨 상관일까? 직장에 대해 너무 많은 기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로어는 “집이란 그 안에 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나오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집을 직장으로 바꾸어도 딱 맞는 말이겠다 싶었다. 직장은 그 안에서 계속 다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직장과 나는 계약 관계일 뿐이며, 100세 시대에 직장생활하며 번 돈으로 은퇴 후에 안락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직장은 많이 다녀야 20대 중반에 들어가 50대 중반이 되기 전에 나오는 곳이다. 30년 다니기 힘들다. 이 말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직장에만 충성할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개인기, 즉 직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직장은 남의 것이지만, 직업은 내 것이 될 수 있다. 직장에서 하던 일의 연장선상에서 직업을 만들든, 아니면 월급을 받는 안정된 시기 동안 자기만의 다른 직업을 만들든 그것은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