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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여왕 “새로운 삶 희망 존중”… 해리부부 독립 지지

입력 | 2020-01-15 03:00:00

왕실 긴급회의서 논란 일단락
형 윌리엄 부부와 불화설 돌자 두 왕자가 “불화 없다” 공동성명
네덜란드-노르웨이-스페인도 평민과 결혼-특권포기 사례 있어
스웨덴선 왕실 인원 자체감축도




2018년 7월 10일 영국 런던 버킹엄궁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메건 마클 왕손빈, 해리 왕손, 윌리엄 왕세손, 캐서린 세손빈(왼쪽부터)이 영국 공군의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3일 해리 왕손 부부의 왕실 독립 선언을 수용했다. 런던=AP 뉴시스

13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손자 해리 왕손(36)과 메건 마클 왕손빈(39)의 왕실 독립 선언을 수용했다. 해리 왕손 부부가 8일 “왕실에서 재정적으로 독립하고 영국과 북미를 오가며 살겠다”고 전격 선언한 지 닷새 만이다. 가디언 등에 따르면 여왕은 이날 긴급 가족회의를 한 뒤 성명에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는 둘의 바람을 전적으로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리 왕손과 그의 형 윌리엄 왕세손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두 형제는 물론 캐서린 세손빈과 마클 왕손빈의 불화가 독립 선언의 주원인이라는 언론 보도를 부인했다. 이들은 “명확하게 부인했는데도 가짜뉴스가 실렸다”고 주장했다.

해리 왕손 부부가 현재의 ‘서식스 공작 및 공작부인’ 작위를 유지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둘은 독립 후 ‘서식스 로열’ 브랜드를 붙인 각종 물품을 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왕실을 배경으로 삼아 돈을 벌겠다는 뜻이어서 완전한 독립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이 “의회가 제공하는 왕실교부금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부부 지출액의 5%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부친 찰스 왕세자의 돈으로 충당해 왔다는 보도도 있다. 영국 왕실의 남성들은 전통적으로 결혼과 함께 왕으로부터 작위를 하사받는다. 작위의 이름은 지명에서 딴다.

당분간 캐나다에서 거주하겠다고 밝힌 왕손 부부의 경호비를 누가 낼지도 관심사다. 이날 영국 일간지 이브닝스탠더드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왕손 부부의 경호비 중 절반인 50만 파운드(약 7억5000만 원)를 재정에서 부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논란이 고조되자 빌 모노 캐나다 재무장관은 “논의된 것이 없다”고 부인했다.

유럽에는 이들보다 먼저 독립을 선언한 왕족이 적지 않다.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의 동생인 콘스탄틴 왕자(51)는 젊은 시절부터 정책연구소, 컨설팅 회사 등에서 근무했다. 그는 왕실 공식 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고 있다. 노르웨이 국왕 하랄 5세의 장녀 마르타 루이스 공주(49)는 2002년 ‘공주 전하(Her Royal Highness)’란 호칭을 포함해 왕족의 모든 특권을 포기했다. 평민 신분인 유명 작가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의 누나 크리스티나 공주(55)도 젊은 시절 독립을 선언하고 잠시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국가대표 핸드볼 선수였던 남편과 공동 운영하던 스포츠 단체의 횡령 및 탈세 혐의가 드러나 왕실 이미지에 먹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웨덴 국왕 칼 구스타브 16세(74)는 스스로 ‘왕실 구조조정’을 선언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슬하의 2남 1녀가 낳은 손주 7명 중 왕위 계승자 빅토리아 왕세녀(43)의 1남 1녀에게만 왕손 직함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나머지 5명의 손주는 왕족에게 제공되는 돈을 받을 수 없고 왕실 업무도 수행하지 않는다. “군주제가 21세기 현대 민주주의에 어울리지 않으며 납세자 부담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일각의 비판을 의식한 선제적 행보라는 평가가 나왔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