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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모녀의 비극 몰랐던 보건당국[현장에서/한성희]

입력 | 2020-01-16 03:00:00


한성희 기자

“보호자인 따님이 우울증이 심하셨어요. 이렇게 노모를 홀로 모시는 분이 우울증을 앓는 경우는 흔해요. 이 일이 끝도 안 보이고 하니까. 그래도 이렇게 될 줄이야….”

13일 전화기로 들려오는 복지센터 직원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그는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중증장애를 지닌 70대 노모를 모셔야 했던 딸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14일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진 중증장애를 지닌 70대 노모를 모시던 보호자였으나 집에서 숨진 채 나흘이나 방치됐던 40대 여성 김모 씨 얘기다.

세상을 떠난 딸 옆에서 나흘이나 방치돼 있다가 발견된 노모만큼이나 딸의 처지는 불우했다. 숨진 채 발견된 딸의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우울증 등 정신 병력을 근거로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숨을 거둔 딸은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아왔다. 어머니를 보살피려 집을 찾는 요양보호사조차 피해 다닐 정도로 증상이 심했다고 한다. 매일 3시간씩 보호사가 방문하면, 딸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보호사가 떠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와 노모를 보살폈다.

노모에게 장기요양보험서비스를 제공해 온 복지센터도 딸의 정신질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이 운영하는 복지센터도 파악하고 있던 딸의 상태를, 지역사회 복지의 주체인 주민센터와 구청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노모가 사는 아파트에서 100m 남짓 떨어진 주민센터는 기자가 소식을 전한 뒤인 13일에 처음으로 이 집을 찾아 현관문을 두드렸다. 주민센터 관계자는 “어르신이 이용하던 장기요양보험서비스는 공단이 진행해 우리는 모녀 상황을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노모에게 중증장애 판정을 내리고 장기요양보험서비스에 드는 비용을 지불해 온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딸의 상황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노모는 2015년 중증장애 등급을 받았다. 공단 직원은 모녀 가정을 찾아 방문조사를 했다. 하지만 조사에서 보호자인 딸의 정신 상태는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방문 작성하는 ‘장기요양인정조사표’엔 현재 보호자의 정신상태를 적거나 체크하는 칸은 없다.

현재 노인장기요양보험제는 전국에서 노년층 약 67만 명이 이용한다. 공단은 심사를 통해 필요성이 인정되는 대상을 선정하고 비용을 댄다. 서비스는 지역마다 사설 운영하는 복지센터에 소속된 민간인 요양보호사가 제공한다. 지역 사회의 위기가구에 대한 통합 관리는 주민센터가 맡고 있다. 3개 기관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없는 사이 이러한 비극이 일어난 셈이다.

복지센터는 공단과 주민센터에 보호자인 딸의 상태를 알릴 의무도, 가이드라인도 현재는 없다. 관련 기관이 서로 협조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뭣보다 제대로 된 소통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말 한마디만 서로 주고받았더라면, 이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성희 사회부 기자 che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