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클래식 카 시장이 활성화되어 있는 외국에서는 각양각색의 차들이 경매에 출품된다. 작은 사진은 클래식 카 의 가치를 뚜렷하게 확인할수 있는 경매장 모습.Bonhams 제공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지만 외국에서는 이처럼 어마어마한 기록이 탄생하기도 하는 클래식 카 경매가 자주 열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 유럽 등지에서 크고 작은 경매가 거의 매주 여러 곳에서 열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경매에 나오는 차들은 각양각색이고 새 차와 비슷한 값에 낙찰되는 차들도 있다. 그러나 경매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출품되는 차들도 많은 것을 보면 외국 클래식 카 시장의 규모가 무척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울러 클래식 카가 수집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자산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준다.
클래식 카는 수집 가치가 있는 자산 중에서도 수익성이 높은 편이다. 영국 자산 컨설팅 업체인 나이트 프랭크(Knight Frank)가 발표한 ‘2019 사치품 투자지수(Luxury Investment Index·LII)’에서 자동차는 10년 수익률 190%로 희귀 위스키(540%)와 주화(193%)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이는 2017년 LII의 10년 수익률 362%보다는 크게 낮아진 것이지만 기대 수익률이 시계, 보석, 미술품을 뛰어넘는다는 사실은 여전하다.
Tim Scott © 2016 Courtesy of RM Sotheby's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할 만한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스토리가 중요하다. 비교적 흔한 차라도 유명인사나 연예인들이 소유했다면 상대적으로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가치 판단 기준이 추상적이면서도 많은 사람이 수긍할 만하다는 점에서 보면 미술품과 비슷하다.
그런 점에서 2018년에 역대 최고 낙찰가 기록을 갈아 치운 페라리 250 GTO는 앞서 이야기했던 가치 평가 기준을 거의 모두 갖추고 있다. GT 경주 출전을 목적으로 모두 36대가 생산된 250 GTO는 페라리의 자랑거리였던 V12 3.0L 엔진과 카로체리아(차체 전문 제작업체) 스칼리에티가 풍동시험을 거쳐 다듬은 아름다운 디자인이 어우러졌다. 많은 사람이 1960년대를 페라리 디자인의 황금기라고 일컫는데, 250 GTO 역시 황금기를 빛낸 차 중 하나였다.
2018년 경매에서 낙찰된 섀시번호 3413GT의 250 GTO는 36대 중 세 번째로 만들어졌으면서, 1964년에 피닌파리나가 디자인하고 스칼리에티가 만든 차체로 개조한 초기 250 GTO 네 대 중 한 대다. 당대 소유주들이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그 차로 직접 경주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고, 현재 보존 상태도 최상에 가깝다. 경매에 앞서 페라리 클라시케(클래식 카 전담 부서) 담당자가 점검을 통해 주요 부품들이 출고 당시에 쓰인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했을 정도다.
클래식 카 관련 산업은 점점 더 커지고 체계화되고 있다. 오랫동안 미술품과 귀중품 경매로 이름을 알린 소더비가 2015년에 클래식 카 전문 경매 업체인 RM 옥션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도 클래식 카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한 결과였다. RM 소더비 외에도 배럿잭슨, 구딩 앤드 컴퍼니, BCA 등 전문 경매 업체는 물론 보넘스, 아트큐리얼 등 귀중품 경매 업체들도 클래식 카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가치를 높게 평가받는 차들도 달라진다는 점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나온 차들이 경매에서 주목을 받았다면, 지금은 1950, 60년대의 차들이 그 자리를 넘겨받았다. 클래식 카 수집가와 애호가들의 세대가 바뀌면서 인기 있는 차들이 나온 시대도 함께 변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흐름이 그대로 이어진다면, 앞으로 20년쯤 뒤에는 1970, 80년대에 나온 차들의 가치가 크게 높아질 것이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으로 자동차 생산을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인 만큼, 그때쯤이면 오래된 국산차도 클래식 카의 반열에 올라 높은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