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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KBO 유니폼’… 오던 팬도 발길 돌린다

입력 | 2020-01-17 03:00:00

[위기의 프로야구, 바꿔야 산다]
<2> 사인 거부-폭행 등 끝없는 말썽




이승엽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대사가 16일 대전에서 열린 ‘2020 KBO 신인 오리엔테이션’ 강단에 올라 프로 선수의 소양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한국, 일본에서 23년 동안 활약한 그는 ‘국민 타자’로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2010년대 한국 프로야구 흥행을 이끌었다. 대전=주현희 스포츠동아 기자 teth1147@donga.com

“진정한 프로는 스스로가 아니라 팬, 동료, 친구, 가족들이 판단하는 겁니다.”

16일 대전에서 열린 한국야구위원회(KBO) 신인 오리엔테이션. 현역 시절 ‘국민 타자’로 활약했던 이승엽 KBO 홍보대사는 새내기들에게 프로 선수가 갖춰야 할 자세에 대해 진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종종 연단에 서는 이승엽은 후배들에게 “내가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야구장 안팎에서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그도 예전 팬들의 사인 요청을 뿌리친 적이 있다. 그는 “야구 선수라는 직업은 열 번을 잘해도 한 번 실수하면 그 낙인이 영원히 간다.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했던 실수가 여전히 부끄럽다. 팬들에게 진 빚을 영원히 갚으며 살겠다”고 했다.

이승엽의 통렬한 자기반성이 무안할 정도로 KBO리그에서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안 그래도 팬들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 야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해가 바뀌었어도 불미스러운 소식은 여전했다. 연초부터 LG 선발 마운드의 한 축을 맡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유망주 A가 여자친구와 다투던 중 이를 말리던 시민을 폭행해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A는 피해자와 합의했지만 구단은 조만간 징계 수위를 정할 계획이다. 비슷한 시기 NC 2군 코치 B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NC는 B와 계약을 해지했다.

최근 몇 년간 경기장 안팎에서는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일들이 쉬지 않고 터졌다. 지난해만 해도 호주 스프링캠프에서 LG 선수들이 카지노 출입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SK 강승호는 음주운전이 적발돼 임의탈퇴 처분을 받았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여상 씨는 유소년에게 불법 약물을 투입해 구속됐다. 포스트시즌에서는 키움 송성문이 경기 중 상대 선수들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막말을 한 사실이 영상을 통해 공개되는 일이 벌어졌다.

한 야구 관계자는 “KBO리그에 종사하는 사람이 선수와 프런트를 포함하면 1000명이 넘는다. 사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재발을 막으려면 일벌백계의 강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류중일 LG 감독 역시 “여자 문제, 폭행, 음주운전, 승부 조작, 약물 등과 얽힌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유니폼을 벗어야 하는 시대”라고 했다.

팬 서비스도 늘 도마에 오른다. KIA와 최근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맺은 김선빈은 지난해 5월 경기장 밖을 나가던 중 사인을 요청한 어린 팬을 못 본 척 지나친 사실이 알려져 질타를 받았다. 8월 23일 ‘야구의 날’에는 이대호(롯데) 김현수(LG) 등 각 팀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사인회 행사에 불참해 원성을 샀다.

엄청난 몸값을 받는 몇몇 선수의 오만한 태도에 팬들은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렇게 쌓인 앙금은 야구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몸값이 몇 수 아래인 팀을 상대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거센 비난 여론을 일으킨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야구 대표팀은 금메달을 획득했지만 예선전에서 보인 수준 낮은 경기력, 대표 선발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을 극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며 귀국해야 했다.

전문가들은 선수들의 의식 변화를 강조한다. 지난해 승부 조작 제안 사실을 자진 신고했던 두산의 이영하는 팬들 사이에 ‘클린 베이스볼’의 상징처럼 인정받는다. KBO 상벌위원인 전용배 단국대 스포츠행정학과 교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사건, 사고가 적지 않지만 스타 선수들은 비시즌 중 의료봉사나 지역 커뮤니티와 교류하며 좋은 이미지 구축에 힘쓴다. 우리 선수들도 지역 및 팬들과 적극적으로 꾸준히 교감해 간다면 선수들을 바라보는 색안경도 점점 옅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배중 wanted@donga.com·조응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