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택시협동조합 ‘빨간불’
“4개월째 월급을 못 받아서… 어머니 기초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명 ‘노란택시’로 불리는 한국택시협동조합의 ‘쿱(coop) 택시’를 5년째 몰고 있는 택시 기사 이원권 씨(61)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현재 쿱 택시는 지난해 9월부터 조합원 100여 명의 임금 5억여 원을 체불한 상태다. 이 씨 등 조합원 21명은 지난해 12월 16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부지청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국내 최초의 택시협동조합인 ‘쿱 택시’가 좌초될 위기에 빠졌다. 2015년 2월 박계동 전 한나라당 의원이 이사장을 맡아 출범한 쿱 택시는 당시 ‘사납금 없는 착한 택시’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현재 쿱 택시는 차고지 임차료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악화됐다.
○ 횡령에 배임 의혹, 4개월째 임금 체불까지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관계자는 “운영진의 불투명한 경영으로 조합원들의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박 이사장이 물러나고 2018년 10월 이일열 이사장(68)이 새로 취임했지만 분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쿱 택시 소속 기사 서성교 씨(58) 등 3명은 “17일 서울 마포경찰서에 이 이사장을 횡령 및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6일 본보와 만난 이 이사장도 “회삿돈 6100만 원을 쓴 건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망해가는 조합을 살려보려다 사기를 당했다는 해명이다. 이 이사장은 “한 자산가가 돈을 빌려주면 급한 불을 끄고, 자금 6억여 원을 투자하겠다고 유혹했다”며 “어이없는 상황이란 건 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우린 모두 아마추어였다”
감사 기능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이사장의 자금 유용 의혹이 불거진 뒤 지난해 10월 조합 내부에서도 감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감사 자료를 작성한 택시 기사 A 씨는 “6100만 원을 인출한 뒤 다시 다 갚았다”는 이 이사장의 말만 듣고, 확인도 없이 감사 결과를 ‘전액 변제’로 처리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발장에 따르면 변제 사실을 입증할 증거는 전혀 없다. 쿱 택시의 강판성 이사(61)는 “우리 모두가 아무 물정 모르는 아마추어였다”고 털어놨다.
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최근 법인택시회사들이 경영난을 겪다 보니 협동조합 모델로 전환하고 싶단 문의가 많다”며 “하지만 선의만으로 사업은 어렵다. 감사, 회계 등 관련 분야에서 전문 경영인을 갖춰야 제대로 된 경영 체계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구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