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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현대무용 접목 ‘블랙스완’…“대중음악, 고급예술로 승화”

입력 | 2020-01-17 19:41:00

방탄소년단 유니버스(BU), 순수예술로 확장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 마사 그레이엄 모티브
발레계 고난도 캐릭터 '블랙스완' 인용, 예술적 치열한 내면 고백




“무용수는 두 번 죽는다. 첫 번째 죽음은 무용수가 춤을 그만둘 때다. 그리고 이 죽음은 훨씬 고통스럽다.”(A dancer dies twice ? once when they stop dancing, and this first death is the more painful)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17일 오후 6시 신곡 ‘블랙 스완(Black swan)’을 발표하면서 이 곡이 ‘미국 현대무용의 대모’ 마사 그레이엄(1894~1991)의 명언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고전발레 동작은 보통 직선을 추구한다. 하지만 20세기 초 ‘현대무용의 개척자’로 통하는 그레이엄은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해 휘어지는 춤선을 안무, 무용의 판을 바꿔놓았다고 평가 받고 있다.

무용평론가인 장광열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예술감독은 “미국은 현대무용의 발상지”라면서 “그레이엄이 현대 무용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대단하다”고 했다.

◇블랙스완, 방탄소년단 치열한 예술적 고백 승화

방탄소년단은 이 대단한 그레이엄과 함께 발레계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블랙 스완’도 가져온다. 블랙스완은 흑조를 가리킨다.

차이콥스키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우아한 백조 ‘오딜’을 맡은 주역 여성 무용수가 상반된 관능적인 흑조 ‘오데트’까지 연기한다. 장 평론가는 “한 무용수가 상반된 캐릭터를 표출해내며 춰야 하는 감정적으로뿐 아니라 기교적으로 아주 어려운 춤”이라고 했다.

실제 발레 팬이라면 흑조 오딜의 32회전 푸에테, 즉 한쪽 다리 발끝으로 몸의 중심을 잡고 다른 쪽 다리를 접었다 폈다하는 고난도 동작의 어려움을 잘 안다.
블랙스완 캐릭터는 할리우드스타 내털리 포트먼이 주연하고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 안무가 벤저민 밀피예가 안무한 영화 ‘블랙 스완’(감독 대런 아로노프스키·2010)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순수함과 우아함의 상징인 발레리나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잔혹함과 욕망을 그로테스크하게 그린 작품이다.

장 평론가는 “‘블랙스완’은 방탄소년단이 죽음을 이야기한 그레이엄의 명언을 끌어들일 정도로 힘든 캐릭터”라면서 “기교적으로 어렵고 예술적으로 완성돼 있지 않으면 소화하기 힘들다. 방탄소년단이 죽음을 언급할 것은 그 만큼 자신들의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라고 봤다.

이날 방탄소년단은 ‘블랙스완’ 음원과 함께 슬로베니아 현대무용팀인 ‘엠엔 댄스 컴퍼니(MN Dance Company)’와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아트 필름’(Art Film performed by MN Dance Company)도 함께 선보였다.

앞서 언급한 그레이엄의 명언 문구로 시작하는 이 아트 필름은 방탄소년단 멤버 숫자와 같은 엠엔 댄스 컴퍼니 7명의 무용수들이 곡의 정서를 현대무용으로 재해석, 한 편의 퍼포먼스 공연을 보여준다.

방탄소년단 소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비현실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고난과 역경을 딛고 탄생한 흑조(Black Swan)를 연상시키는 독창적인 안무와 감각적인 영상미가 시선을 압도한다”고 소개했다.

장 평론가는 “이번에 음원과 영상 콘셉트는 기존의 대중예술 작업을 순수예술과 연관시켜 가치나 미를 고급예술로 승황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봤다.
“대중음악 춤에 순수무용을 접목하면 전혀 다른 움직임이 나온다. 현대무용은 음악과 합일되지 않으면 순수 미적인 가치를 표출하기 힘든데, 순수 무용의 접목으로 단순한 춤이 아닌 예술적 감수성을 담아 고급 예술이 됐다”고 평가했다.

◇방탄소년단 세계관, 순수예술로 확장

방탄소년단의 세계관(BU)은 이렇게 확장됐다. 세계관은 지적인 측면뿐 아니라 실천·정서적 측면을 아우르는 세계 파악을 목적으로 한다. 방탄소년단은 이 세계관을 적극 도입한 팀이다.

철학 용어이던 세계관은 게임, 영화 등으로 넘어오면서 시나리오의 근간을 이루는 시간적, 공간적, 사상적 배경을 가리키게 됐다. 캐릭터부터 전반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뼈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 ‘다크 유니버스’ 등 할리우드의 대형 영화 스튜디오들도 이런 세계관을 구축했다.

K팝 첫 ‘빌보드 200’ 1위에 세 차례나 오른 방탄소년단은 이 세계관으로 K팝을 넘어 세계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을 넓혔다는 평을 듣는다.

‘학교 3부작’ ‘청춘 2부작’ ‘러브 유어셀프’ 시리즈 등 앨범을 낼 때마다 연작 형식으로 스토리텔링을 형성한 뒤 한 세계관을 만들고 팬들을 끌어들였다. 이런 공감대는 세계적인 팬덤 구축으로 이어졌다. ‘방탄소년단 유니버스’(BU)로 불린다.
이번 신곡 ‘블랙스완’과 ‘아트 필름’은 BU를 현대미술 언어로 확장한 작품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선보이는 자리다. 방탄소년단은 음악뿐 아니라 현대 미술이라는 새로운 영역과의 조우를 통해 자신들의 철학과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하게 된 것이다.

앞서 방탄소년단은 발매 예정인 새 앨범 ‘맵 오브 더 솔 :7’의 프로모션도 현대미술과 협업하고 있다. 전시기획 및 운영사 아트플레이스가 지난 1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방탄소년단과 글로벌 미술 작가들이 협업한 현대미술 전시 프로젝트 ‘커넥트(CONNECT), BTS’를 개막했다.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 방시혁 빅히트 대표 겸 프로듀서, 한국의 이대형 아트 디렉터(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이 디렉터가 총괄 기획을 맡았다. 런던의 벤 비커스와 케이 왓슨, 베를린의 스테파니 로젠탈과 노에미 솔로몬, 뉴욕의 토마스 아놀드 큐레이터가 각 국가별 전시 프로젝트의 기획자로 참여했다.

장 평론가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접목은 현재 문화계에서 세계적인 흐름”이라면서 “방탄소년단이 순수무용의 움직임과 정신적인 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태도가 주목할 만하고 바람직하다”고 짚었다. “다른 팀들과 확실히 차별성을 가지고 왔다. 방탄소년단 멤버들 자체가 예술적 끼나 재능이 많아서 이런 수준을 예술적으로 끌어올렸고 더욱 더 차별성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풀이했다.

아트 필름 공개 전부터 슬로베니아 노바고리차를 기반으로 삼은 현대무용단 ‘엠엔 댄스 컴퍼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이 무용단 홈페이지는 트래픽 초과로 다운됐다. 현대무용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팀이다. 팬덤 아미 사이에서는 방탄소년단 멤버 중 지민이 현대무용을 배운 만큼 또 다른 현대 무용 프로젝트가 마련돼 있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오는 2월21일 네 번째 정규 앨범 ‘맵 오브 더 솔 : 7’을 공개한다. 이 앨범은 일주일간 342만 장의 선주문량을 돌파하며 방탄소년단 앨범 사상 최다 선주문 기록을 세웠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