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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적극행정 발목 잡는 ‘감사공포증’… 정책감사 대폭 줄여야

입력 | 2020-01-18 00:00:00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 개혁이 절실하다는 당위성엔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규제 개선에 나서야 할 공직사회는 몸을 사리고 있다. 감사원 감사 공포증이 적극행정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의 ‘공직사회 뿌리부터 바꾸자’ 시리즈에 따르면 강영철 전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이 규제조정회의에 참석한 공무원들에게서 가장 자주 들었던 말도 “감사가 나와서 제가 다치면 책임지겠습니까”였다고 한다.

고위공무원 A 씨는 사무관 시절 연구개발(R&D) 사업평가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단계별 업무를 동시에 처리했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업무 처리 순서를 지키지 않았다는 질책을 받았다고 한다. 비슷한 감사원 징계 위험을 겪은 공무원들은 ‘정해진 일만 하라’는 경험칙을 지키게 된다. 이런 분위기가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만연케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기 힘든 정책적인 판단에 평가 잣대를 들이대는 감사 관행도 문제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주요 정책은 대부분 ‘적폐’ 대상이 됐다. 특히 감사원 감사가 정책감사에 치우쳐 공무원들을 더 움츠리게 한다. 감사 방식도 ‘성과감사’보다는 법령 해석이나 절차 준수 여부 등을 따지는 ‘특정감사’에 치중하다 보니 서류 작성에만 집착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방치한 채 공무원에게만 규제 개혁을 촉구하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현 정부 출범 후 잦아진 직권남용 수사도 공직사회를 위축시키고 있다. 직권남용죄가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광범위하게 적용되면서 일선 공무원들은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틀을 깨는 적극행정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한다. 사법 당국도 이런 여론을 감안해 직권남용에 대한 법리 적용에 엄격해야 할 것이다.

감사원 감사는 예산의 적절한 집행을 감시하고 공직 기강을 다잡는 중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감사와 공직사회가 선순환하기 위해선 감사원이 정책 자체에 대한 감사를 줄이고 대신 회계감사나 직무 감찰 등에 집중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규제 개혁이 절실한 혁신 정책 및 국가 R&D 사업 분야 중심으로 공무원의 적극행정에 대한 면책범위 확대 방안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