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정권 15년간 출산책 쏟아냈지만 합계출산율 세계 최저로 곤두박질 인구재앙 공포 조장만으론 길 못 찾아 여성노동환경 주거문제 개선 등 출산친화적 조직·사회문화 만들어야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서울대 명예교수
한국은 1970년대까지는 산아제한 정책을 실시했던 고출산 사회였다. 그러나 1983년 합계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떨어진 후, 2002년 합계출산율 1.1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을 나타내면서 저출산에 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었고 급기야 정부가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를 설치하였고,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하여 5년마다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작성토록 했다. 2006년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년)을 수립한 이후, 현재 제3차 기본계획(2016∼2020년)을 시행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진보정권, 보수정권을 가리지 않고 정책적 대응을 했고 저출산에 대한 각종 토론과 담론 등이 쏟아져 나왔지만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저출산 현상의 원인들을 보면 첫째, 성장이 정체된 후기자본주의 시기 청년실업, 주거 비용, 사교육비 등 자녀 양육 비용 부담 등의 경제 요인 둘째,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사회 여건 셋째, 여성의 경제활동과 사회 진출의 증가 넷째, 전통적인 결혼 및 자녀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와 개인화 및 양성 평등 의식 고취 등 문화 요인 등이다. 물론 이러한 모든 원인에 대한 대응으로서 결혼·출산·육아에 대한 개인, 특히 여성의 부담을 줄여주고, 사회 여건과 문화를 양성 평등적으로 변화시켜 주는 정책 방향은 적절하다.
자녀 양육비 부담 경감, 보육시설 확충, 여성의 파트타임 근무 확대 등은 저출산을 막아주는 매우 중요한 필요조건이지만 열악한 여성 노동시장 여건으로서는 출산 가능성을 높이는 게 힘들다. 아울러 빈번한 이사 등 불안정한 주거 문제, 예기치 못한 사회 위험, 즉 질병, 교통사고, 장애, 산업재해 등에 대한 사회보장제도의 허술함과 같은 가족의 전체적인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들은 출산을 감소시키는 요인이므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대책들이 저출산을 막는 필요조건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출산의 충분조건으로서 출산 동기 강화와 관련된 대책을 강구해 나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 소중한 삶의 선택에 대한 방향을 구체적으로 정책에 담아야 한다. 건강한 임신·출산에 대한 사회책임 강화 대책과 출산·가족친화적 조직문화 및 사회문화 조성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어떤 요인들이 전통적인 결혼 및 자녀에 대한 가치관을 변화시키고 있는지 등에 대한 심층 연구가 많아야 하며, 다자녀 가족을 대상으로 한 다자녀 출산의 동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심층 분석도 필요하다.
끝으로 저출산 대책에는 정책 목표 수립과 함께 정책 집행의 수단이 되는 재원과 인력, 그리고 정책 전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즉 적절한 재원 조달 방안과 함께 정책 집행에 적합한 인력 투입 방안, 그리고 정책 전달 체계 수립 방안이 동시에 강구되어야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을 펼 수 있다.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