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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달라져야 나라가 달라진다[이정향의 오후 3시]

입력 | 2020-01-18 03:00:00

<8>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




이정향 영화감독

11년 전 이맘때, 뉴욕 허드슨강 위에 비행기가 불시착했다. 칼바람 부는 영하 7도의 오후 3시 반. 뉴욕발 노스캐롤라이나행 비행기는 이륙 직후 고도 975m에서 새들이 엔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바람에 양쪽 엔진이 완전히 망가진다. 66t짜리 비행기는 1초에 5m씩 추락하는 쇳덩어리가 되었다. 주변 모든 공항의 활주로를 열어 놓겠다는 관제탑의 배려에도 기장은 허드슨강을 택한다. 활주로에 가기도 전에 추락하리란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57세의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미국 공군 조종사 출신의 베테랑 기장이다.

영화는 설리 기장의 청문회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비행기가 강 위로 무사히 착수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속도와 각도를 정확하게 맞추지 않으면 비행기 몸통이 여럿으로 동강 난다. 기적적으로 꼬리만 다치고 침수된 이 비행기는 결국 박물관에 모셔졌다. 항공사는 기장이 오판으로 활주로 대신 강을 선택한 건 아닌지를 조사한다.

불시착 2분 만에 155명 전원이 기체 밖으로 나왔고, 1분 후에는 통근용 페리 선박들이 구조대원들을 싣고 도착해 20분 만에 모두를 태우고 떠났다. 그 사이에 설리 기장은 물이 차오르는 기체에 들어가 탈출하지 못한 승객이 있는지 두 번씩이나 구석구석을 살피고 맨 마지막으로 탈출한다. 기체는 곧 물에 잠긴다. 부상자는 승객을 돕다가 다리를 다친 승무원 한 명뿐.

다행히 허드슨강 선택이 최선이자 최고의 판단임을 인정받고 영화는 끝난다. 2009년 1월의 미국은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 불황으로 온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었다. 설리는 그들에게 위기를 극복하는 희망이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해피엔딩을 즐길 수 없었을 거다. 창피한 무력감이 밀려왔다. 우리에겐 왜 저런 기적이 안 일어날까, 왜 저런 영웅이 없을까, 왜 참사는 항상 되풀이될까.

설리 기장이 있는 미국이 부러웠다. 빈틈없이 신속한 구조를 하는 미국이 탐났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평범한 국민일 뿐이다. 국민의 힘이 바로 국가의 힘이기에 이렇게 되려면 우리 국민 개개인이 달라져야 한다. 한 나라의 구조 대응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안전 의식과 비례하기에 안전 불감증에 찌든 국민이 질 높은 구조 수준을 기대하는 건 무리다. 지하 노래방에 갔는데 비상구가 막혀 있으니 다른 곳으로 가자는 친구가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미국은 9·11테러 때의 구조 방법상 미숙했던 점을 계속 보강하여 훈련해 왔다고 한다. 우리는?

재앙은 한 번의 실수로 발생하지 않는다. 잘못이 연속적으로 벌어진 끝에 참사가 일어나듯,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여러 명의 결과물이 모여서 기적이란 이름을 만든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