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 1921~2020] 한국 경제성장 이끈 집념의 경영인
호텔 설립 회의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왼쪽)이 임직원들과 롯데호텔 설립 추진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1979년 6년간의 공사를 마치고 문을 연 롯데호텔은 당시 동양 최대 특급호텔로,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가 투자됐다. 고인은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뤄야 한다”며 호텔 건설을 주도했다.
○“기필코 관광 입국 이뤄야”
1965년 한일 수교 이후 꿈에 그리던 고국 투자의 길이 생기자 신 명예회장은 1967년 자본금 3000만 원으로 한국에서 롯데제과를 시작했다. 식품 사업으로 시작했지만 그는 곧 관광과 유통으로 눈을 돌렸다. 롯데그룹이 비약적인 발전을 시작한 시기도 이때다. 그는 1973년 롯데호텔의 전신인 반도호텔을 인수했다. 당시 호텔 투자는 모험이었다. 한국에 특급호텔을 이용할 만한 사람도 적었고, 더욱이 한국에 관광 오는 외국인도 드물었지만 고인은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 입국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수한 호텔의 재공사 기간은 6년이나 걸렸다.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맞먹는 1억5000만 달러(약 1725억 원)를 투자했다. 1979년 10월에 문을 연 롯데호텔 서울은 38층으로 원래 건물보다 무려 30층이 높았다. ‘한국의 마천루’로 불리며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는 미래를 보는 경영자였다.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을 믿었다. 1984년 신 명예회장은 서울 잠실 일대에 롯데월드, 호텔, 백화점을 지을 것을 지시했다.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지만 그는 “이제 한국의 관광산업은 볼거리를 만들어서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야 한다. 롯데월드가 그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개점 1년 후면 교통 체증이 생길 정도로 붐빌 것”이라는 그의 말은 적중했다. 롯데월드는 성공적인 프로젝트로 기록됐다.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여전히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테마파크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다.
고인의 열정은 그를 집념의 경영자로 만들었다. 2017년 4월 문을 연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신 명예회장이 30년 이상 추진한 프로젝트였다. 그가 잠실 일대에 초고층빌딩 건설을 위한 부지를 매입한 시점이 1987년, 공사를 시작한 게 2010년이다. 그간 임직원들이 ‘노른자 땅을 놀리느니 차라리 아파트를 짓자’고 주장하면 고인은 ‘뭘 모르는 소리’라며 호통을 쳤다고 한다. 고인은 롯데월드타워를 끈질기게 추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느냐. 세계에 자랑할 만한 시설을 남겨야 한다.”
123층 롯데월드타워는 그의 말대로 관광객이 몰리는 랜드마크가 됐다. 2017년 서울 중구 롯데호텔 신관 개·보수 공사가 시작된 후 신 명예회장은 롯데월드타워를 임시 거처로 삼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볼거리’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꿈이 담긴 롯데월드타워에서 고인은 백수(99세)를 맞았다.
롯데월드 개관식에 1989년 7월 12일 열린 롯데월드 개관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과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 여사. 고인은 “롯데월드를 통해 한국의 관광산업을 문화유산 등 있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서 볼거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며 1984년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했다. 롯데그룹 제공
○몸소 실천한 ‘거화취실’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리를 취한다).’ 신 명예회장 집무실에 걸려 있는 글귀다. 고인은 이 말을 좌우명으로 삼아 기업을 경영했다. 대기업 총수지만 수행원 없이 혼자 서류가방을 들고 한국과 일본 출장길을 오갔다.
고인은 꼼꼼한 카리스마 경영으로 롯데그룹을 성장시켰다. 그룹과 관련된 숫자는 모조리 기억해 보고하는 임원들을 긴장하게 했다. 8개월 만에 보고에 들어간 한 계열사 임원은 크게 당황한 적이 있다. 8개월 전 보고한 수치를 조금 수정했는데 고인이 이를 알아채고 지적한 것이다. 이 임원은 “수십 개 계열사 보고를 매일 받는데도 몇 달 전 보고서의 수치를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에 너무 놀랐다”고 전했다.
고인은 매일 백화점 전점의 일 매출을 보고받고 부진한 점포의 점장을 호출했다. 그룹의 굵직한 경영전략뿐 아니라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는 방식으로 한일 롯데를 운영한 것으로 유명했다. 고인에게는 ‘셔틀 경영’이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홀수 달에는 롯데호텔 서울 34층에서, 짝수 달에는 일본 도쿄 신주쿠의 일본 롯데 본사 12층에서 번갈아 가며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을 경영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전까지 이 방식을 고수했다.
신수정 crystal@donga.com·신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