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새 외무상에 군부강경파 리선권
‘항일 빨치산’ 황순희 장례식 조문 김정은 국무위원장(사진 가운데)이 17일 부인 리설주와 함께 황순희 조선혁명박물관장의 장례식을 찾아 조문했다. 김일성 주석과 빨치산 활동을 함께했던 황순희는 북한에서 ‘항일 빨치산 1세대’로 꼽힌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 미국통 외무상 최단 기간 경질…후임엔 군부 출신 막말 강경파
북한의 대미 외교를 총괄해 온 리용호의 교체 가능성이 나온 것은 지난해 12월 김 위원장이 소집한 마라톤 노동당 전원회의 직후부터다. 전원회의 당시 주석단에 포함됐던 리용호가 지도부 인선이 마무리된 회의 마지막 날 김 위원장과의 단체 기념사진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 리용호의 경질은 지난 주말 북한이 평양 주재 외국 대사관에 외무상 교체 사실을 통보하면서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리선권이 외무상으로 발탁된 것에 대해 대북 소식통들은 “매우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인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도 선출되지 못한 리선권이 신임 외무상에 임명된 것은 북한 내 외교 엘리트의 위상이 급격히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찰총국 출신으로 남북 군사실무회담 대표를 맡기도 했던 리선권은 리용호가 외무상에 임명됐을 당시 차관급인 조국평화통일위원장으로 남북 협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2018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한 대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라고 해 막말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특히 같은 해 10·4선언 기념행사에 참석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에겐 “배 나온 사람에게 예산을 맡겨선 안 된다”, 고위급회담에 늦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에겐 “시계가 주인 닮아서 관념이 없다”고 말하는 등 안하무인식 언행을 이어간 강경파로 통한다.
○ 北 핵보유국 지위 강화하며 비핵화 허들 높일 듯
전격적인 외무상 교체를 두고 정부 안팎에선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로 제시한 정면돌파전이 본격화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워싱턴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것.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외교보다는 정면돌파전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핵화 협상의 진전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개별관광 추진 등 독자적인 남북협력 구상을 내놓은 가운데 이번 인사로 남북관계를 둘러싼 먹구름도 더욱 짙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북한의 한국 무시 기조는 ‘하노이 노딜’ 이후 이미 결정된 것”이라며 “강경파 리선권을 외무상에 앉힌 것은 한국을 사실상 무시하고 가겠다는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한기재 record@donga.com·박효목 기자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