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하지만 승정원일기에 나타난 경종에 대한 의관 김유현의 기록은 의외로 담담하다. “어제 저녁부터 등과 배에 홍반이 여러 개 생겨 가끔씩 가려워했으며 팔다리에는 홍반이 별로 없었습니다. 양명경(대장과 위에 관계된 경락)의 풍열이 피부에 배여 청기산(淸氣散)이라는 처방에 칡(사진)과 황금을 넣어 3첩을 복용했습니다. 처방을 한 지 이틀 후 증상이 순조롭게 좋아졌습니다.” 청기산은 두드러기를 치료하는 대표적 처방이다. 두드러기의 원인은 음식, 약물, 정신적 요인 등이 있지만 경종의 두드러기는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피부가 흘린 눈물이었던 셈.
경종은 대의를 위해 사적 불행과 불운을 뒤로한 조숙형 인간이었다. 경종 즉위 후 유생 조중우가 “아들이 어미를 존귀하게 받드는 것이 춘추(春秋)의 대의”라며 장희빈의 작위가 서인(庶人)에 머물러 있는 것을 문제 삼으며 “작호를 더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렸다. 경종은 대신들의 반대 상소가 빗발치자 조중우에게 장형을 내리고 유배를 보냈다. 조중우는 결국 유배 중 길 위에서 죽고 말았다. 광폭한 군주로 일평생을 산 연산군과는 정반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때문일까. 경종은 재위 4년의 짧은 기간 동안 뇌전증과 말더듬증으로 고생했다. 노론은 그를 ‘바보 임금’이라며 비웃었다. 하지만 경종을 죽인 건 오히려 바로 그 당파였다. 경종의 몸은 모친의 비극적 죽음과 당파 정치의 혼란 속에서 급속도로 망가졌다. 어쩌면 경종은 조선 민중의 분노와 고통을 안은 채 스스로 산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