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비싸게’ 집값 투기 핵심은 금융… 거품 꺼지면 손실은 사회 전체로 英-美, 실거주 아니면 고금리 적용 12·16대책, 돈줄 조였지만 ‘빈틈’… 은퇴 예정자-고령층 대출 위험 수준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한 동네에 살고 있는 갑을병이 모두 1억 원짜리 집을 갖고 있다. 어느 날 ‘호재’ 뉴스가 나오자 갑이 을에게 집을 2억 원에 판다. 을은 병에게 집을 3억 원에 팔고 병은 다시 갑에게 집을 4억 원에 판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투자 ‘스타’들이 나타나 이 동네 집값은 아직 싸고 앞으로 오를 일만 남았다고 스토리를 제공한다. 언덕에 있는 집은 언덕에 있으니 값이 오를 것이고 평지에 있는 집은 평지에 있으니 값이 오를 것이라고 한다.
이쯤 되면 온 동네 집값이 경쟁하듯 오르고 투기에 관심 없던 이들까지 달려든다. 인사이더들이 빠질 때까지 이 과정은 계속된다. 아웃사이더들은 영혼까지 끌어다가 ‘다걸기’함으로써 인사이더들의 고수익을 실현시켜 주다가 붐이 끝난 뒤에야 사태를 파악한다.
이러다 거품이 꺼지면 아웃사이더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금융 부문도 상처를 입는다. 금융기관의 손실은 대개 사회가 공동으로 부담하지만 말이다. 그래서 각국 금융 당국은 개인대출, 특히 주택담보대출에 많은 규제를 가한다. 선진국에서 규제의 핵심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즉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로 대개 30∼40% 수준이다.
미국 영국 등에선 소득을 안 보고 담보 가치만 보거나 만기 일시 상환 식으로 주택 대출을 해주면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로 간주한다. 폭력을 써야만 약탈이 아니다. 정상적 소득으론 빚 갚을 능력이 안 되고 담보를 처분해야만 갚을 수 있는데도 대출해 주는 것은 도박판에 나가라고 떠미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선 12·16부동산대책에서 일부 지역 9억 원 초과 주택을 담보로 한 차입자에 대해 DSR 40%를 적용했다. 일부 지역 임대사업자에 대해선 이자비용이 임대소득의 3분의 2를 넘지 못하게 했다. 빚내서 집 사라는 부채 주도 성장정책보다는 진일보한 조치지만 아직 빈틈이 많다. 무엇보다 DSR 40% 적용 대상이 너무 제한적이다. 또 은퇴를 앞둔 이들에 대해선 DSR 산정 시 장래 소득이 과대평가돼 약탈적 대출이 나가기 쉽다. 선진국에선 은퇴할 이들에게 대출할 땐 은퇴 직전의 높은 소득이 아니라 이후의 낮아질 소득을 기준으로 삼게 한다.
임대사업자 대출의 경우에도 미국에선 실거주용이 아닌 주택에 대한 대출에는 0.25∼1%포인트 더 높은 금리를 부과하고 임대소득은 실제 값의 75%만 소득으로 인정해 위험도를 반영한다. 영국에선 임대사업자의 소득 대비 이자비용을 계산할 때 실제 금리보다 2%포인트 높은, 최소 5.5%의 금리를 상정해 금리가 올라도 감당할 수 있는지를 검증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