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에요. 제 딸이 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유나는 ‘천사(angel)’예요.”(킴벌리 어머니)
두 어머니는 맞잡은 손을 오랫동안 놓지 못했다. 눈물로 뒤덮인 서로의 얼굴을 연신 쓰다듬기 바빴다. 그저 “고맙다” “Thank you”란 말만 되뇌면서.
오전 11시 10분쯤. 킴벌리 가족이 회견장에 들어서자 유나의 어머니 이선경 씨(48)는 반갑게 인사하면서도 벌컥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 김제박 씨(53)도 진작부터 눈가가 촉촉했지만, 킴벌리를 힘차게 두 팔로 끌어안았다. 나지막하게 “고마워요”라며.
눈물범벅이긴 마찬가지였던 킴벌리. 한참 숨을 고른 뒤 따스한 선물 하나를 건넸다. 1만여 ㎞를 날아오며 소중히 품에 안고 온 손 편지였다. 직접 한 자씩 써내려간 글을 킴벌리는 찬찬히 읽어나갔다.
“유나 어머니, 절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준 생명의 선물 덕에 제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단 사실을, 유나 가족에게 알리려 한국에 왔어요. 전 유나가 너무 궁금합니다. 항상 유나를 제 가슴에 간직하고 살 거예요. 앞으로는 제가 유나 어머니의 가족이 되고 싶습니다.”
킴벌리의 어머니 로레나 씨(46)도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어여쁜 아기 천사가 담긴 ‘스노볼(snowball)’이었다. 아래엔 ‘유나의 선물 덕에 우린 매일 기적을 맞이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로레나 씨는 “우리가 받은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선물이지만, 우리는 이런 천사가 유나라고 믿고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국내에 사는 장기 기증자 가족과 해외 거주하는 수여자 가족이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서로의 정보도 알려줄 수 없다. 행여 기증자 유가족이 금전적 보상 등을 요구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나는 미국에서 교통사고를 당했고, 미국 법에 따라 기증절차를 밟아 국내 법 적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에선 시민단체 ‘Donor Network’가 주선해 기증자와 수여자 가족의 교류를 적극 돕는다. 2016년 1월 24일 안타까운 사고로 유나를 떠나보낸 가족이 킴벌리에게 처음 연락을 받은 것도 그해 7월 15일이었다. 킴벌리는 첫 편지에서 “유나가 준 선물 덕에 9시간씩 투석하며 목숨을 이어갈 필요가 없게 됐다. 유나는 내 맘 속에 영웅(hero)으로 남을 것”이라 적었다. 유나 가족에게 큰 위로가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국내 장기기증자 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도 이 자리에서 “법을 개정해 양 측 가족이 교류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다른 기증자 유가족인 이대호 씨도 “2010년 떠난 아들의 심장이 지금도 어딘가에서 뛰고 있다. 아들 몫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소식이 궁금하다”고 호소했다.
재단법인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장기 기증자와 수여자 가족의 교류가 이뤄지면 기증문화에 대한 인식도 좋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2019년 기준 인구 100만 명당 기증자 수가 33.2명이다. 8.7명인 한국의 4배 가까이 된다. 심지어 한국은 기증자 숫자 자체도 2016년 573명에서 2018년 449명으로 해마다 줄고 있다. 이 단체의 김동엽 사무처장은 “기증하고 떠난 고인의 가족에게 걸맞은 예우를 갖춰야 한다. ‘장기기증은 후회 없는 선택’이라 말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모여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