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권 학생의 의대 쏠림 현상은 2000년대 들어 유별나게 심해졌다. 의사처럼 보수, 안정성을 고루 갖춘 직업이 드물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한의사를 제외하고 1.9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3.3명의 57% 수준이다. 진료수가는 낮지만 1인당 진료 횟수가 많아 적정 수익이 보장되는 셈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라 사회적 존경도 따라 온다.
▷수능 공부 일년 더해서 평생 직업을 얻을 수 있다면 개인으로선 합리적 선택일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선택이 모여 사회적으로는 인적 자원의 배분을 왜곡하는 것이 문제다. 똑똑한 인재들이 기초과학·공학자가 아닌 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닥터헬기를 타고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하거나 응급실을 지키려는 이는 많지 않다. 돈 되는 전공, 수도권에 의사가 몰리면서 응급의학과·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의 의사 부족 현상이 심각하다. 바이오·뇌과학 등 신산업에 진출하는 의사도 턱없이 적다.
▷지난해 미국 갤럽이 가장 신뢰받는 직업을 조사한 결과, 간호사 의사 약사 순이었다. 이 순위는 17년간 거의 변동이 없다. 2016년 인하대가 직업의 가치를 존경도·신뢰도 등 척도로 평가했더니 한국에선 소방관이 1위, 환경미화원이 2위였다. 의사는 그 다음이었다. 20년 전인 1996년에는 의사가 1위였다. 의대 진학 열풍은 뜨거운데 사회적인 존경은 식어가고 있다. 업(業)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의사를 만나기 힘든 것이 그 이유일 것 같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