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까talk]자서전 쓰는 2030
자서전을 낸 20대 대학생들이 14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자신의 책을 들어 보였다. 유년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의 삶을 정리한 자서전, 아르바이트나 봉사활동 등 특정한 경험에 초점을 김인환 김혜인 김수현 서예지 씨, 출판사 ‘이분의일’ 방수영 대표.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대학생 김혜인 씨(22·여)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유치원 시절부터 현재까지 삶의 기록을 담은 자서전을 지난해 10월 출간했다. 제목은 ‘나(我)’와 ‘날(日)’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담은 ‘아무 날 대잔치’(이분의일). 학교 선생님이던 엄마를 기다리면서 방과 후 학교 구석구석을 쏘다니며 탐정놀이를 했던 초등학생 때 추억, 연락이 끊긴 학창 시절 단짝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보며 ‘인간관계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대학생의 고민…. 뇌리에 남은 작은 사건부터 머릿속을 스쳐간 상념까지 그의 22년 인생이 109쪽 분량에 담겼다.
김 씨는 “이런 사소한 이야기를 굳이 책으로 만들 필요가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이 책은 오직 나 자신을 위해 썼다”며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앞으로의 날들을 재미있게 맞이하겠다고 결심할 수만 있다면 자서전을 낸 목표는 충분히 이뤘다”고 말했다.
자서전(自敍傳). 작자가 자신의 일생을 소재로 스스로 짓거나 남에게 구술해 쓰게 한 전기다. 반세기를 훌쩍 넘게 살아온 노년의 회고록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20대 청춘도 짧다면 짧은 그동안의 삶을 자신만의 색깔로 버무린 자서전을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개인 자서전 전문 출판사 ‘꿈틀’에서 나온 ‘오늘, Haru’는 ‘하루’라는 필명을 쓰는 20대가 약 20년의 삶을 되돌아본 자서전이다. ‘어린 시절’ ‘나의 십대’ ‘청춘시대’ ‘전성기’ ‘앞날’로 구성됐다. 여느 자서전과 다른 점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구상, 꿈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문을 연 꿈틀의 박범준 편집장(47)에 따르면 그동안 노년층이 주된 고객이었지만 최근에는 20, 30대가 자서전을 내고 싶다며 문의해 온다. 제대를 앞둔 군인, 세계 여행을 하다 비행기 조종사의 꿈을 갖게 됐다는 직장인도 있다. 꿈틀은 2018년부터 20대의 자서전 3편을 펴냈다.
풋풋한 삶 전반이 아니라 특정 순간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알바) 7개를 해본 자칭 ‘프로알바러’ 김수현 씨(22·여)가 펴낸 ‘알바 다녀왔습니다’(이분의일)가 대표적이다. 수제 버거, 피자, 공장, 호프집 등 자신이 거친 알바별로 장(章)을 나눠 근무 기간, 시급 같은 기본 사항에다 알바를 하며 느낀 서러움까지 가감 없이 담았다.
개인 자서전은 판매용이 아니라 소량 주문 제작으로 만들어져서 제작 비용이 싸다. 출판사에 간단한 편집과 제본만 맡기면 10만 원 안팎이다. 자서전 출판사 ‘이분의일’ 방수영 대표(29·여)는 “노년층은 직원들이 인터뷰해 대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20대는 직접 원고를 쓰고 표지를 디자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튜브 짤방(짧은 편집 영상)이나 이른바 ‘어록’에 심취하는 요즘 젊은층이 왜 자서전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박 편집장은 “싸이월드 미니홈피 배경음악이든 블로그 글이든 젊은이들은 자신의 표현 욕구를 다양한 매체로 분출해 왔는데 자서전도 그중 하나”라며 “빠르고 짧게 감정을 표출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세였다면 책을 통해 긴 호흡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려는 아날로그적 취향도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 2030 에세이집도 유행
서모니카 씨가 걸그룹, 온라인 쇼핑몰 등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쓴 ‘저 아직 안 망했는데요’(마음의 숲), 정재윤 씨가 월급쟁이의 삶을 담은 ‘재윤의 삶’(미메시스), 김슬 씨가 자취 경험을 정리한 ‘9평 반의 우주’(북라이프). 각 출판사 제공
김재희 jetti@donga.com·손택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