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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이냐, 병이냐… 대용량 맥주의 고민

입력 | 2020-01-21 03:00:00

갈색 페트병, 2025년 퇴출




2025년이면 야유회나 엠티 등 단체행사의 필수품으로 꼽히는 맥주 ‘갈색 페트병’을 볼 수 없게 된다. 환경부와 업계가 지난해 12월 업무협약을 맺고 2024년까지 갈색 페트병을 병이나 캔으로 대체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 개정으로 지난해 12월 25일 이후 국내에서 생산·수입되는 생수·음료수병은 유색(有色)으로 만들 수 없다. 페트병은 잘게 부숴 플레이크로 만든 뒤 섬유나 솜, 내장재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데, 이미 색이 입혀진 페트병은 활용도가 한정돼 재활용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생수와 음료의 경우 지난해 말부터 페트병을 투명하게 바꿨다.

그러나 주류를 담는 페트병은 개정안에서 제외됐다. 맥주가 관건이었다. 주류업계가 “맥주 품질을 유지하려면 직사광선에 노출되지 않게 갈색 페트병에 담아야 해서 당장 없앨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환경부와 주류업계는 맥주의 특수성을 감안해 당장 법 개정에서는 제외하되, 자체적으로 대안을 찾기로 했다. 대체재는 없는지, 소비자들의 반응은 어떨지 등을 따져보고 2025년부터 페트병을 대체할 방법을 찾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생산성본부가 작성한 ‘PET 맥주병의 재질·구조 개선에 관한 연구’ 최종 보고서를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실을 통해 입수해 들여다봤다.


○ 해외 페트병과의 차이는… 생산량 적고 단일 재질

우리나라만 맥주를 페트병에 담아 파는 건 아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과 에스토니아, 오스트리아, 터키 등에서 맥주를 페트병에 담아 판매하고 있다. 한국처럼 색상도 갈색이다.

그러나 생산량은 적다. 해당 국가 모두 전체 맥주 상품 중 10% 이하만 페트병으로 생산한다고 응답해왔다. 한국 맥주 상품 중 페트병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7%다. 벨기에는 자국 판매용에는 쓰지 않고, 아시아 시장만 겨냥해 중국 공장에서 페트병을 생산하고 있다. 페트병 생산량이 적은 이유에 대해 벨기에 측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페트병 재질도 우리와 다르다. 이들은 3, 4년 전부터 용기를 단일 재질로 만들었다. 우리나라 맥주 페트병은 나일론과 페트 등 3중 복합 재질로 만들어져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물질들을 분리시키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 소비자 74% “페트병 없어도 동일 브랜드 선택”

성인 406명을 대상으로 맥주 선호도에 대한 설문도 진행했다. 응답자의 54%가 “맥주 페트병 판매 중단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맥주 페트병을 대체할 대안이 필요하다’는 조건부 찬성 의견도 29%였다. ‘반대한다’는 응답은 13%에 그쳤다.

젊은 소비자일수록 페트병보다 캔을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대 소비자의 75%는 캔을 선호한다고 답한 반면 페트병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3%에 그쳤다. 반면 60대 소비자는 54%가 캔을, 8%가 페트병을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전체 연령으로 봤을 때 맥주 용기 선호도는 캔(71%)이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병(15%), 페트병(5%)이 뒤를 이었다.

국산 맥주 페트병이 없어질 경우 어떤 상품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선 수입 맥주가 복병으로 등장했다. 응답자의 74%는 동일한 브랜드의 국산 캔맥주나 병맥주를 선택하겠다고 밝혔지만 22%는 수입 캔맥주를 마시겠다고 응답한 탓이다. 맥주업계는 국내 페트병 맥주가 사라지면 소비자 일부가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 대안은 대형 캔이나 병?… 페트병 보완 기술도 검토

맥주업계는 복합 재질로 만들어진 갈색 페트병을 대형 캔이나 병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에서 사용하는 단일 재질 페트병 제작 기술은 현재 우리나라에 없다. 기술을 들여와 단일 재질로 만들어도 갈색 페트병의 재활용률이 떨어지는 문제는 극복할 수 없다.

다만 캔이나 병으로 페트병을 대체할 경우 각각의 장단점이 있어 당분간 고민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용량 알루미늄 캔은 소비자 선호도가 높고 가벼운 데다 품질 보존 기능도 뛰어난 장점이 있지만 가격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설비 증설 등 초기 투자비용도 필요하다.

병맥주 역시 대용량으로 새로 만들 경우 설비 투자가 필요하다. 맥주 맛을 보존하는 데는 최적이지만 병을 대용량으로 만들 경우 무겁고 취급 및 운반이 불편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생수처럼 투명한 페트병에 맥주를 담는 대신에 직사광선을 막을 수 있는 라벨이나 잘 분리되는 코팅 기술을 개발하는 방안도 두루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