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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은 인류의 지식… 경제 여유있는 韓日은 투자할 의무”

입력 | 2020-01-22 03:00:00

[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2020 신년 글로벌 석학 인터뷰
<4> 노벨물리학상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




가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 우주선연구소장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 배경으로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와 한 연구에 지속적으로 몰두한 점 등을 꼽았다. 6일 인터뷰를 진행한 1시간 내내 그는 미소를 잃지 않았고, 전문 용어 없이 쉬운 단어로 질문에 답했다. 가시와=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명문대 입학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습니다. 연구가 물론 힘들지만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201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61) 일본 도쿄대 우주선연구소장은 노벨상의 비결로 ‘긴 호흡’과 ‘재미’를 꼽았다. 그는 중성미자(中性微子·neutrino)에 질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공로로 아서 맥도널드 캐나다 퀸즈대 교수와 함께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승 고시바 마사토시(小柴昌俊·94) 도쿄대 명예교수도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해 ‘사제(師弟) 노벨상’ 수상자로 유명하다.》

가지타 교수와의 인터뷰는 6일 도쿄 근교 지바현 가시와에서 이뤄졌다. 노벨상 수상 후 5년이 지났지만 연구소 정문에 그의 대형 사진이 걸렸고 표지석 옆에 축하 비석도 세워져 있었다.

그는 고교 시절 한때 성적이 중하위권이었고 지방 국립대인 사이타마(埼玉)대 재학 시절에도 아주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박사 학위를 받던 1986년 중성미자에 흥미를 느껴 29년간 연구한 결과 노벨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명문대 입학이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꼭 알아줬으면 좋겠다”며 “연구를 즐기지 않았으면 이 긴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연구 성과에 대해서는 “내게 노벨상을 안겨준 중성미자 연구 또한 인간의 일상생활에는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래도 우주의 기원을 밝히는 데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게 해주는 등 인류의 기초 지식을 풍부하게 했다”며 기초과학 연구 활성화를 위한 정부, 재계, 학계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이 노벨상 강국이 된 것도 국가의 꾸준한 투자와 과학자들의 자유로운 연구 풍토가 바탕이 됐지만 이런 분위기가 옅어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요즘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중력파다. 중성미자 연구를 오래 했기에 약 10년 전부터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싶었다. 중력파는 우주를 보는 새로운 방법이다. 연구를 통해 우주의 수수께끼가 더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력파는 블랙홀이 다른 블랙홀과 충돌할 때 발생한 강력한 중력에너지가 우주 공간에 물결처럼 퍼져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15년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할 때 이미 중력파 존재를 예측했다. 이후 100년이 흐른 2015년 9월 미국에서 처음 관측됐다. 첫 관측에 공을 세운 배리 배리시 미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명예교수 등 3명은 2017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일본이 지금까지 과학 분야에서 무려 24개 노벨상을 수상했다. 중력파 연구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일본이 노벨상을 받은 연구는 대체로 20세기 후반에 진행됐다. 경기 호조로 일본 전체에 여유가 있었다. 연구자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때 다양한 연구를 진행해 지금 꽃을 피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면 앞으로는 위험하다.”

―왜 그런가.

“과거에는 박사 학위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정규직, 연구직, 대학 교원 등의 신분으로 자유롭게 연구를 할 수 있었다. 지금 젊은 과학자들은 주로 계약직으로 일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른 직장을 찾아야 하니 (성과를 보여주기 위한) 논문을 계속 써야 한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금도 줄고 있다.”

―한국도 비슷하다.

“박사 학위를 따는 젊은 인구만 비교하면 한국이 일본보다 배 가까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제대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최근 약 15년 사이에 박사 학위를 따려는 학생이 크게 줄었다.”

일본 국책연구기관 과학기술학술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박사 학위 취득자는 2016년 약 1만5000명으로 10년 전보다 16% 줄었다. 인구 100만 명당 박사 학위 취득자 수는 한국이 271명, 일본이 118명이다.

―일본 정부는 2001년 ‘24조 엔을 투자해 2050년까지 노벨상 수상자 30명을 배출한다’고 발표했다. 24개의 노벨상이 나왔으니 성과가 증명된 것 아닌가.

“지금까지 탄 노벨상은 해당 투자 발표 이전부터 진행된 연구에 대해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봐야 한다. 당시 정부가 그런 발표를 해준 것은 감사하지만 이후 기초과학 연구가 아니라 (실생활에 곧바로 도움을 주는) 출구지향적인 연구에 투자한 듯한 느낌이 든다. 당시 투자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는 사이타마현의 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특별히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다만 독서를 좋아했다. 사이타마현 가와고에고교를 졸업한 뒤 사이타마대 물리학과, 도쿄대 대학원 이학계연구과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성적이 썩 좋지 않았다고 들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중간보다 아래였다. 수업 진도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었다. 예습 복습도 제대로 안 했지만…. 졸업 때에는 입학 때보다 성적이 올라갔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면서 소립자에 흥미를 가졌다. 본격적인 공부는 대학원에서부터 한 것 같다. 무엇보다 ‘재미’를 느꼈다. 연구자에게는 대학원 교육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대학원에서 지도교수로 고시바 교수를 모실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다. 그분이 아니었으면 노벨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중성미자 연구는 언제 시작했나.

“1986년 3월 박사 학위를 땄다. 같은 해 한 종류의 중성미자가 적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이게 뭐지?’라며 연구를 시작했다. 우연한 발견이 노벨상으로 이어진 셈이다. 그 우연이 어디서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예산을 배분하는 정부 당국자가 연구자들이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정비해 주는 게 중요하다.”

중성미자는 우주 만물을 이루는 기본 입자로 약 137억 년 전 ‘대폭발(Big Bang)’ 때는 물론 태양의 핵융합, 원자력발전소의 핵분열 반응 등에서도 나온다. 전기적으로 중성이며 물체를 뚫고 이동할 수 있다. 세 가지 종류(전자, 타우, 뮤온)가 있다. 과학계에서 질량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그는 이 전자, 타우, 뮤온이 서로 형태를 바꾸는 과정에서 질량을 가지고 있음을 밝혀냈다.

―노벨상을 수상한 여러 연구 덕분에 인류의 삶이 윤택해졌을까.

“실생활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인류의 지식 축적에 공헌했다. 우주가 어떻게 태어났는지는 모두가 흥미를 가지는 주제다. 그 의문에 해답을 줄 수 있다. 한국도 일본도 세계에서 어느 정도 부와 여유를 가진 국가가 됐다. 정부 예산을 인류 전체의 공동 지식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인공지능(AI)이 화두다.

“AI 기술은 향후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더 중요해질 것이다. 다만 새로운 기술이 반드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다고는 할 수 없다. 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과학계가 주목해야 할 연구 분야는….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 문제에 각국 과학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다만 과학자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인류 전체가 힘을 합쳐야 한다.”

―노벨상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 과학도에게 조언해 달라.

“연구가 물론 힘들지만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다. 즐기지 않으면 새로운 사고를 하기 어렵고 성과도 나지 않는다. 조급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나도 처음 중성미자에 호기심을 가진 후 29년이 지나 노벨상을 받았다.”

가시와=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