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신종폐렴 비상] 정보은폐에 중국내서도 비판 목소리
21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에서 시설환경팀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입을 막기 위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인천=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병원에서 만난 20세 여성은 “사람이 많은 곳에는 못 가겠다”며 “당국이 발표한 확진 환자 수치가 축소됐다”고 주장했다. 뉴(牛)모 씨(49·여)는 “(전염 상황이) 너무 걱정된다. 위기감이 크다”며 “외지인들이 베이징에 오지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 약국과 편의점 마스크는 동이 났다.
우한 폐렴이 급격히 확산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관련 정보를 은폐하고 늑장 대응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내에서도 당국을 비판하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위생건강위원회(위건위)는 21일 우한 의료진 15명이 폐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뒤늦게 인정했다. 일부 중국 매체가 “환자 한 명이 우한 의료진 14명을 감염시켰다”고 밝힌 뒤에야 의료진의 감염 사실을 부랴부랴 인정한 것이다. 의료진 감염 여부는 사람 사이의 전염을 판별하는 핵심 지표. 그동안 중국 정부는 “사람 사이의 감염 가능성은 낮다”고 이야기해 왔다. 위건위에 따르면 감염된 의료진 가운데 1명은 위중한 상태다.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에서도 우한을 다녀온 부모가 동행하지 않은 딸에게 폐렴을 옮긴 사실이 확인됐다. 인도 통신사인 PTI는 우한에 간 적이 없는 광둥성 선전(深(수,천))시 국제학교의 인도인 교사 프리티 마헤시와리 씨(45·여)가 폐렴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중난산(鐘南山)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고위급 전문가팀장은 “광둥성 확진 환자 2명은 우한에 가지 않고 가족을 통해 병에 걸렸다. 사람 간 전염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밝혔다.
한편 중국 당국에 따르면 20, 21일 톈진시, 저장성, 허난성, 충칭시 등에서 확진 환자 86명이 추가로 발생해 총 304명으로 늘었다. 중국 성(省), 시(市) 31곳의 절반을 넘는 17개 성, 시가 우한 폐렴의 영향권에 들었다. 의심 환자는 54명이고, 사망자도 6명으로 늘어났다. 대만에서도 첫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2일 우한 폐렴과 관련해 긴급회의를 열 예정이다.
○ 중국 당국, 폐렴 은폐 의혹
늑장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중국 당국은 20일에야 우한 폐렴을 ‘전염병 방지 집행법’상의 법정(法定) 전염병에 포함했다. 정부 의료기관은 법정 전염병에 대해서만 지정 환자 격리 치료와 같은 통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우한 폐렴 환자 발생 사실이 처음 공개된 뒤 20일간 중국 정부가 법적 근거도 없이 대응해 왔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중국 시민들의 공포와 당국에 대한 불신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관영 신징(新京)보는 사설에서 “우한시는 왜 의료진 감염 사실을 빨리 밝히지 않았는가. 투명하게 민중의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며 당국을 정면 비판했다.
한중 보건당국의 방역 공조도 부실할 수밖에 없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우리도 많은 소식을 중국 현지 보도를 통해 확인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중국 현지의 출국자 감시 시스템에 허점이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국내 확진 환자 A 씨는 아무 이상 없이 중국을 떠나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중국 현지에서는 일부 중국인들이 우한 폐렴을 치료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의료 수준이 높은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이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