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동 경제부 차장
“용적률 규제를 풀어서 강남 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린다. 50층, 100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숲을 조성하면 집값이 빠진다.” “옛날 강북에서 넘어온 8학군 명문 고교를 다시 원위치시키면 된다. 학교가 있던 자리엔 교도소나 쓰레기소각장을 짓는다.”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들이 보유한 강남 아파트를 반액으로 시장에 팔도록 강제한다. 정권이 내로남불 비난을 피할 수 있는 건 덤이다.” “스카이캐슬을 무너뜨린다. 좋은 대학 갈 필요가 없으니 강남 살 이유도 없어진다.” “강남의 모든 지하철역을 없애 교통지옥을 만든다.”
토크는 점점 ‘아무 말 대잔치’로 흘렀다. 어차피 진지한 해법보다는 그럴싸하고 자극적인 얘기를 막 던지고 보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의견 일치를 본 것은 저 중 하나만 제대로 실행해도 강남 집값은 단칼에 잡히리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강남만 때려잡으면 이 나라에 무슨 탈이 나도 괜찮다’는 전제만 받쳐 줬다면 말이다.
정부 여당은 황급히 진화에 나섰다. “전혀 검토한 바 없는 개인적 생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부를 오랫동안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그런 잠깐의 말실수에도 정권의 깊은 철학과 속내가 담겨 있다고 본다. 바로 강남 집값을 잡는 것은 절대 선(善)이고, 이를 달성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괜찮다는 특유의 사고 체계다. 실제 요즘 권력자들의 발언을 보면 “총선 전에 집값은 무조건 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당정청에 퍼져 있는 듯하다. 이 ‘무조건’이라는 수식어가 갖가지 무리한 대책과 설화를 낳고 있다.
정부는 고가 주택만 정교하게 조준하면 큰 부작용 없이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그래서 투기꾼의 불로소득을 환수하고 서민들의 화병을 풀어줄 수 있다는 기대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시장을 인위적으로 비틀면 당장은 효과를 볼 수 있어도 결국엔 반드시 더 큰 반작용이 따르게 돼 있다. 비틀기의 강도가 셀수록 충격도 커지고 그만큼 회복도 어려워진다. 시장은 스스로 망가지면서 반시장 정책에 복수를 한다.
대중이 듣기 좋은 말들을 ‘사이다 대책’이라며 내세우는 것은 몽상가나 선동꾼이 하는 일이다. 책임 있는 공직자들은 그러면 안 된다. 경제원리를 거스르는 대책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걸 모르는 이들에게 핵주먹 타이슨의 명언을 이렇게 각색해 들려주고 싶다.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대책은 있다. 시장에 한 대 얻어맞기 전까지는.”
유재동 경제부 차장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