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왜곡 논란에도 조사 지지부진 시대흐름에 따른 변화라는 의견도
일제강점기 종묘제례악 왜곡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2015년 서울 종로구 종묘에서 펼쳐진 종묘제례악 공연. 동아일보DB
종묘제례악은 조선의 왕실 사당인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음악과 춤이다. 조선 세종이 만들고 세조 때부터 실용화해 각종 의식에 본격적으로 썼다. 2001년 종묘제례와 함께 유네스코 무형유산걸작(현재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됐지만 일제강점기 형태와 내용이 변질됐다는 지적이 일어 왔다.
실제 종묘제례악의 문악(文樂)인 ‘보태평(保太平)’과 무악(武樂)인 ‘정대업(定大業)’은 일제강점기 명칭이 각각 ‘보태화(保太和)’와 ‘향만년(享萬年)’으로 바뀌어 사용됐다. 논문과 책 ‘종묘제례악 일무의 왜곡과 실제’(민속원·2002년)로 관련 문제를 지적했던 이종숙 한국전통악무연구소장에 따르면 태화는 일본 최초의 통일정권 이름인 ‘대화(大和)’와 통한다. ‘일본을 보전해 만년을 누린다’는 뜻으로 명칭이 바뀐 것이다.
남은 문제는 각 음의 길이와 무용 등이다. 이종숙 소장은 “지금은 선율에서 각 음의 길이를 똑같이 연주하지만 세종은 음별로 다양한 길이로 연주하도록 창제했고, 악보도 그대로 남아 있다”며 “악보대로만 연주하면 되는데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 종묘제례악의 원형 왜곡 문제를 제기한 건 국립국악원 악사장을 지낸 국가무형문화재 처용무 예능보유자 김용 씨(87)다. 김 씨와 함께 복원운동을 벌이고 있는 종묘제례악원상보존시민연대 이창걸 공동대표는 “현재의 종묘제례악 일무(佾舞)는 시용무보(時用舞譜·종묘제례의 춤을 그림으로 설명한 책)와 다른 점이 상당하다”며 “일제의 왜곡 등으로 이왕직 아악부가 제대로 전수받지 못한 탓”이라고 말했다.
왜곡이라기보다 ‘변화’였다는 반론도 있다. 국립국악원 학예사 재직 당시 이 문제를 연구했던 주재근 정효국악문화재단 대표는 전화 통화에서 “춤 같은 공연 예술은 영상으로 남지 않은 한 원형을 함부로 논하기 어렵다”며 “일제가 이를 인위적으로 바꿨다기보다 그 시대를 거치며 흐트러진 것”이라고 말했다.
2003년부터 국정감사를 통해 제기된 원형 복원 관련 조사위원회 구성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시민연대의 민원 등에 따라 문화재청이 지난해 12월 중 국립국악원 등과 함께 조사위 설립 필요성을 검토하는 회의를 개최하겠다고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했으나 실제로는 열리지 않았다. 연말 행사가 많아 올해 2월로 미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