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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터란 ‘연결과 소통’… 거장의 해답[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

입력 | 2020-01-22 03:00:00

<23> 한국타이어 판교 본사




한국타이어 판교 본사 내부. 입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타이어 모양의 유리 천장을 뚫고 올라오면 만나는 2층 로비. 위로 회전하며 상승하는 아트리움을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이 밝힌다.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평생 사람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짧지 않다. 좋은 일터란 무엇일까? 개인의 하루 시간을 의미 있게 해주고, 공동체의 오랜 시간을 가치 있게 해줄 일터의 모습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건축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포스터는 새로운 일터 창조에 관심이 많다. 특히 그는 도시 공공공간과 건물 공적공간을 매끄럽게 이어주는 것에 관심이 많다. 그 이어주기는 때로는 수평으로 소통하고, 때로는 수직으로 연결한다. 이 신비로운 공간 아케이드를 포스터는 구조로 수놓고 빛으로 밝힌다.

포스터는 어려서 지독히 가난했다. 신문 배달, 슈퍼 알바, 우유 배달 등 안 해 본 것이 없었다. 시청 심부름꾼으로도 일했다. 이때, 그는 점심시간조차 쪼개 아껴 썼다. 점심 샌드위치를 후딱 먹어 치웠고, 주변 공공건축을 스케치하러 다녔다. 포스터는 19세기 맨체스터 아케이드에 특히 매료됐다. 길은 굽어져 끝이 보이지 않아 호기심을 유발했고, 길 위 철골 구조 지붕틀은 꽃봉오리처럼 폈고, 구조 위 유리지붕이 태양 빛을 바닥까지 내리꽂았다. 그것은 밑바닥 인생을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숨겨진 일터(시장)의 새로운 발견이었다. 포스터는 평생 이를 잊지 않았다.

포스터가 설립한 건축회사(F&P)는 이제 쟁쟁한 글로벌 회사다. F&P는 홍콩과 베이징 요르단에 국가 대표 국제공항을 설계했고, 프랑크푸르트와 도쿄 런던 뉴욕 등에 고층 타워를 설계했다. 우리 건축계도 오랫동안 포스터의 건축을 국내에서 보기를 고대했다.

한때 대우가 국내 처음으로 포스터가 디자인한 본사 타워를 서울에 지으려고 했지만 부도로 물거품이 됐다. 만약 원안대로 지어졌다면 아시아 오피스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2016년 한국타이어가 대전에 포스터가 디자인한 ‘테크노돔’을 선보였다.

이 건물은 직원 1000명을 수용하기 위해 연면적 9만6347m²를 두 동으로 나눴다. 원형 연구동과 원통형 기숙사동이었다. 글로벌 건축 팬들에게 회자된 일터는 수평적인 연구동이었다. 반사하는 원형 수면 조경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잎맥처럼 펼쳐지는 각 동을 잎사귀 모양의 거대한 지붕이 하나로 덮는다. 180m 길이의 중앙 아트리움은 아케이드처럼 4층까지 관통하고, 거대 원형 지붕 천창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은 내부를 밝힌다.

한국타이어는 경기 성남시 판교 본사도 포스터에게 의뢰했다(국내 창조건축과 협업). 2020년 개관하기 위해 지금 한창 공사 중이다. 이 건물은 판교로와 대왕판교로 교차점에 위치하는 10층 타워인데, 퇴근길에 이를 바라보는 테크노밸리 젊은이들의 눈빛은 반짝인다. 타이어 모티브를 디자인 곳곳에 차용했다. 1층 천장도 타이어 모양이고, 건물 내 모든 조명도 타이어 모양이다. 1층 타이어 모양 유리 천장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뚫고 올라가면, 이 건물의 클라이맥스인 2층 로비에 도달하는데, 이곳에서는 운동하는 타이어를 본다.

사각형 콘크리트 바닥을 타이어 모양으로 3층부터 중앙에 도려냈는데, 이런 바닥이 위로 올라갈수록 나사처럼 회전하며 상승한다. 2층 로비 바닥에 서서 위를 바라보면, 내부 아트리움이 스크루바처럼 운동하고, 그 끝에는 태양 빛이 운동 궤적을 직선으로 꿴다. 팔방으로 트이며 소통하는 공간이다. 대전 테크노돔 일터가 포스터의 수평 아케이드라면, 판교 본사 일터는 그의 수직 버전이다. 2016년 대전에 선보인 수평적 일터를 보고 놀랐는데, 2020년 판교에 선보일 수직적 일터를 보고도 놀랄지 궁금하다. 3일 후면 음력설이다. 올 한 해는 더욱 새로운 일터 창조에 매진하자.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