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제 서울대 명예교수는 16일 서울 관악구 개인 연구실에서 “당나라 수도 장안에서 한족과 어우러져 산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올해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박 교수가 주창한 ‘호한(胡漢)체제’는 후한 말 이후 중국 서북방 유목민족(호족)이 중원으로 진입해 농경민족인 한족과 대립하면서도 공통된 정치, 문화체제를 형성한 과정을 가리킨다. 중국과 대만, 일본의 주요 학술지가 이 개념을 논평했고 학자들이 인용했다. 한국 학자가 창안해 해외 학계까지 유통시킨 유일한 역사용어로 꼽힌다. 최근 ‘중국중세 호한체제의 정치적 전개’와 ‘중국중세 호한체제의 사회적 전개’(이상 일조각)를 출간한 박 교수를 16일 서울 관악구 개인 연구실에서 만났다.
“북조의 북주는 최약체였어요. 그러나 호한 통합의 기치 아래 형성된 ‘관롱집단(關(농,롱)集團·관중·關中과 농서·(농,롱)西 출신 중심의 지배층)’이 성공하면서 북제를 무너뜨렸고 뒤를 이은 수나라가 남조까지 평정할 수 있었습니다.”
북주는 호족만 있던 군대에 한족을 끌어들인 부병제(府兵制)로 군사력을 키웠다. 북위가 한족에 익숙한 균전(均田) 명칭과 유목민이 피정복민에 적용하던 생산방식을 결합해 균전제를 시행한 것도 호한체제의 하나다. 이런 문화는 당나라로 이어져 당 태종은 황제뿐 아니라 호족들의 수장을 일컫는 가한(可汗)으로 칭했다.
호한체제는 현재의 중국과 다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인의 형성에도 기여했다고 박 교수는 본다. 그러나 중국에서 민족 간 갈등과 충돌은 이어지고 있다. 박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현대 중국에 관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한 뒤 “중국 당국이 분리주의를 철저하게 억누르고, 각 자치구의 한족 인구는 크게 증가해 가까운 미래에 중국의 분열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