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옥살이’ 2인 인터뷰 1991년 ‘공무원 사칭 뒷돈’ 연행 경찰 물고문 등 가혹행위 못이겨 1년전 공범과 여성살해 허위자백 검찰 조사서 결백 주장했지만 무기징역 받고 21년 복역후 출소 누명 쓴 공범 모친, 조사자료 보관… “억울” 재심청구 불씨로 살아나 당시 경찰들 “모른다”“기억안나”… 재심 청구인 “사과 없인 용서없다”
부산 엄궁동 낙동강변 살인사건 범인으로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아 21년여간 옥살이를 한 최인철 씨(앞)와 장동익 씨가 6일 부산고법에서 열린 재심 결정 재판에 들어가고 있다. 법원은 이날 경찰의 물고문 등 불법 행위로 허위 자백을 한 것이 인정된다며 재심 결정을 내렸다. 부산=뉴스1
구자룡 논설위원
○ 경찰의 가혹행위로 ‘강간살인 자백’
부산 을숙도에서 ‘자연보호 명예감시관’을 하던 최 씨는 1991년 11월 6일 무면허 운전교습을 하던 한 남성이 눈감아 달라며 내미는 3만 원을 받았다. 자동차 운전석 앞 유리에 경찰 마크를 달고 다니던 최 씨를 경찰로 생각한 것. 이틀 후 ‘공무원 사칭 금품 수수’ 신고로 경찰에 연행됐다.
‘엄궁동 낙동강변 강간 살인사건’은 1990년 1월 4일 오전 2시경 각각 35세, 30세 남녀가 길에 세워 놓은 차에서 밀회하던 중 여성은 강간 후 살해되고 남성은 상해를 입은 미제 사건이었다. 장 씨와 최 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감형돼 21년을 복역하다 2013년 출소했다.
그러나 부산고법은 6일 “경찰 조사 과정에서 폭행과 물고문 등을 당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과 가족들에게 응답이 늦어진 것에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며 폐정하며 묵례를 했다. 앞서 검찰 과거사위원회도 지난해 4월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장 씨가 연행될 때 18개월이었던 딸은 장 씨가 출소한 얼마 후 결혼해서 아들을 낳았고 최 씨가 잠깐 다녀온다며 경찰을 따라 나설 때 일곱 살이던 아들은 자신이 연행될 때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 검찰과 법원에서도 거부된 ‘허위자백’ 호소
장 씨와 최 씨는 검찰 조사는 다를 줄 알았으나 더 큰 절망을 안겨 주었다. 최 씨는 “고문 때문에 경찰에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호소했지만 경찰에서는 시인해 놓고 왜 부인하느냐며 검사가 두꺼운 법전으로 머리를 치고, 검찰 수사관은 신고 있던 슬리퍼로 뺨을 때렸다”고 했다. 검찰 청사에서 조사를 기다릴 때도 경찰이 자신을 책상 밑에 밀어 넣고 구타했다.
최 씨의 처와 처남은 엄궁동 사건 당일 최 씨가 대구의 처가를 다녀왔다는 알리바이를 법원에서 증언했다가 오히려 위증교사와 위증죄로 각각 징역 8개월과 집행유예 1년, 징역 6개월과 집행유예 1년의 처벌을 받았다.
○ ‘옥중일기’와 신앙생활로 달랜 21년
‘그 많은 일들이 마치 남의 이야기였으면, 아니 꿈이었으면 합니다’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그날의 일들을 도무지 잊을 수 없어 이렇게 적습니다’…. 최 씨는 수감 중 자신의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경찰에 연행된 뒤 고문을 당할 때 상황을 자세히 기록했다. 처음에는 영치금 영수증과 편지지 조각 등 어떤 종이라도 있으면 적어 두었다가 후에는 성경을 필사하기 위해 재소자에게 지급되는 두꺼운 노트에 적었다. 출소할 때쯤에는 2권 분량이 됐다. 그는 “출소 후 결백을 입증하고, 고문 경찰에 대한 복수의 마음도 새기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당시 4명의 경찰 중 3명은 퇴직하고 한 명은 현직인데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하고 있다”며 “사과 없이는 용서 없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 재심 불씨 된 어머니의 ‘분홍색 보자기’ 유품
장 씨가 출소해 동생을 찾아가자 이미 10년 전에 작고한 어머니의 유품이라며 ‘분홍색 보자기’ 하나를 건넸다. 어림잡아 2000장 이상 되는 경찰, 검찰 조사 및 재판 관련 기록 복사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법인 부산’ 소속 변호사로 장 씨와 최 씨 항소심과 상고심을 맡다 무기징역 선고로 사건이 종결되자 의뢰인에게 남긴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30여 년 변호사 생활에서 가장 한이 남는 사건이라고 했다. 장 씨의 어머니가 남긴 ‘분홍색 보자기’는 재심 청구의 불씨가 됐다.
두 사람은 법률구조공단과 국가인권위 지역사무소를 찾아갔지만 “재판이 끝나 도울 게 없다” “증거가 있으면 재심을 신청하라”는 말만 듣고 실망하던 중 2016년 ‘재심 전문 무료 변론’을 하던 박준영 변호사를 만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박 변호사는 두 사람이 사하경찰서에서 고문을 당하기 두 달 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법으로 다른 강도사건 피의자에게도 가혹행위가 있었으며 그 피의자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을 찾아냈다. 이 사건의 피의자 홍모 씨가 당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가혹행위 내용들이 최 씨와 장 씨가 당했다는 가혹행위 내용과 일치해 재심 결정의 주요 근거가 됐다고 재판부는 명시했다.
○ 시각장애 있는데 야밤에 범행?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자술서에는 소아마비를 앓아온 윤 씨가 열린 대문을 두고 ‘담장을 넘어 들어가 범행했다’는 구절이 ‘엉터리 조작’ 사례의 하나로 지목됐다.
‘낙동강변 살인사건’ 조서에도 의혹이 적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시신경 위축’을 앓은 1급 시각장애인인 장 씨가 가로등도 없고 달도 뜨지 않은 칠흑 같은 밤에 길에서 대상을 물색하며 기다리다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경찰 조서는 장 씨가 35세 피해자 남성과 몸싸움을 벌이고 테이프로 묶어 물에 빠뜨렸다가 10분간 물에서 격투도 벌였다고 했다.
장 씨는 시력이 나빠 초등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고 군은 면제됐다. 안경이나 렌즈로도 교정이 불가능하다. 그는 3시간 넘게 인터뷰를 할 때 기자의 메모를 전혀 읽지 못했다. 휴대전화는 숫자판에 감촉이 있는 폴더폰에 시각장애인용 소프트웨어를 내려받아 음성 인식 도움을 받아 사용했다.
경찰 조서에 따르면 장 씨와 몸싸움을 벌이다 물에 빠진 35세 남성, 즉 엄궁동 사건 현장의 피해자이자 유일한 목격자인 남성 A 씨는 사건이 난 뒤 인근 공장에 숨어 있다 공장 직원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갔고 의사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간파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엄궁동 살인사건 발생을 경찰에 신고한 이는 A 씨가 아니라 A 씨를 담당한 의사였던 것이다. A 씨는 사건 발생 2년 후 지병으로 사망했다.
화성 8차 사건의 윤 씨와 엄궁동 사건 재심 재판 결과 모두 빠르면 올해 나온다. 법원의 재심 결정문으로만 봐도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기관이 앞장서 유린했거나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보여주는, 징비록(懲毖錄)으로 남길 부끄러운 사건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