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뀌겠어? 이름만 바뀌지” 권력의 속성 말해주는 영화 속 대사 유신독재 때 중앙정보부가 했던 일, 지금은 대통령비서실이 하는 세상 국민은 ‘윤석열 검찰’ 지켜보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총선을 석 달 앞둔 지금, 41년 전의 10·26사태를 다룬 영화 개봉이 정치적으로 안 읽힐 리 없다. ‘내부자들’에 나오는 불후의 명대사처럼 국민이 개돼지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마 위로 힘줄이 돋는 모습까지 연기하는 이병헌이 남산의 중앙정보부장 역할을 한다. 고뇌 끝에 독재자 대통령을 시해한 다음 실제 인물 김재규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혁명을 한 것”이라고 최후진술 하는 장면은 장렬하다. 태극기 시위대와 비슷한 성향이라면, 불순한 의도로 때맞춰 나온 좌파 선전물이라며 분노할 듯싶다. 반대의 성향이라면,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진 적폐를 이번에야말로 청산해야 한다며 총선까지 공분을 이어갈 듯하다.
권력의 속성은 바뀌지 않았다. 영화 속 여성 로비스트가 “세상이 바뀌겠어? 이름만 바뀌지…” 하고 내뱉는 대사 그대로다. ‘촛불혁명’이라며 집권한 문재인 정부나, 쿠데타로 집권해 18년 독재를 한 박정희 정권이나,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권력 유지라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다.
1972년 10월 유신은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3권 분립과 민주적 절차를 형해화하고 법과 제도를 박정희 중심으로 재편한 친위쿠데타였다. 그 시절, 선거 공작부터 정책 개발까지 중정이 주무르던 역할을 현 정부에선 청와대가 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국가정보원이든 청와대든 국회의원까지 잡아다 고문하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통령민정수석실이 동의서를 받았다며 공직자들 휴대전화를 압수해선 사적 내용까지 탈탈 터는 것도 발가벗겨져 매달린 듯한 충격과 공포를 준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나마 박정희는 독재를 했고, 중정은 초법적 폭압기구였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현 대통령비서실의 법률적 근거는 정부조직법 14조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을 둔다’가 고작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각을 능가하는 일을 한다. 일개 대통령 보좌 조직이 대통령의 절친 송철호를 위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의혹을 보면, 독재 시절 관권선거가 차라리 우습게 보일 정도다.
박정희 때도 1972년 10월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다음에야 중정에서 내놓았던 개헌안, 선거제 개편, 감찰원 신설안이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 선거제 개편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을 평상시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당연한 듯 내놓은 건 정상이랄 수 없다. 특히 공수처가 전현직 공직자를 대상으로 수사와 영장청구를 하고, 판검사와 경찰에 대해선 기소까지 한다는 건 계엄 없이 3권 분립을 형해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통령비서실의 초법적 행위가 드러나자 서둘러 공수처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친위쿠데타 하듯 검찰 직제 개편을 불사한 것도 불길하다.
박정희는 북한 김일성을 이길 수 있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집념을 가졌고, 중정을 주요 목표 달성에 동원했다고 원작자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는 기록했다. 중정이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 견제할 수 있었던 김정렴 비서실장 같은 인물도 한때 존재했다.
문 대통령에게는 북한 김정은을 이겨내겠다거나 부국강병의 집념이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닌지 두렵다. “초법적 권력이나 지위를 내려놓는 것이 권력기관 개혁 요구의 본질”이라고 검찰을 압박하면서도 비서실의 초법적 권력과 지위는 눈에 안 보이는 것 같다. 현 정부를 견제할 곳은 ‘윤석열 검찰’뿐이다. 건투를 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