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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규제 만들고 해당 기관 재취업… 땅에 떨어진 공직 도덕성

입력 | 2020-01-24 00:00:00


규제가 있는 곳에는 권한이 주어지고, 권한 뒤에는 부패 또는 이권이 뒤따르기 쉽다. 그 이권 중 하나가 퇴직 공무원의 감독 대상 민간 기업이나 산하기관, 관련 협회 재취업이다.

올 3월 열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주주총회에서 금융감독원 전직 국장 2명이 각각 감사로 재취업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두 은행에 대해 금감원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이미 문책 경고라는 중징계를 예고했고, 두 은행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감독기관 전직 간부가 피감기관의 감사 자리에 가는 것은 적절치 못한 처사다.

이미 KB국민, 신한, KEB하나, NH농협 등 4곳의 감사 자리를 금감원 출신이 차지하고 있어 우리은행마저 금감원 출신이 오게 되면 5대 시중은행 감사 자리를 모두 금감원 전직 간부가 꿰차게 된다. 감독-피감독 기관으로 보면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식의 규제 공생이 될 수 있다. 재취업 금지 기간인 퇴직 후 3년이 지나 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해도 국민 입장에서는 이래서야 철저한 감시 감독이 이뤄지겠느냐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규제 때문에 속이 타는 민간 기업 또는 협회가 로비 창구로 어쩔 수 없이 규제를 만든 부처 출신의 전직 공무원을 채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다. 규제 권한이 있는 공직사회에서는 보편적 현상이다. 재취업을 쉽게 하려고 규제를 만든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 경우도 없지 않다.

공무원 수가 늘면 반드시 이들이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인 규제가 늘어나는 것은 일종의 필연이다. 2014년부터 5년 반 동안 환경부(18.9%), 고용노동부(13.4%) 등 이른바 규제 부처의 인력이 부쩍 늘었다. 같은 기간 환경부 895건을 비롯해 고용부(395건), 금융위(470건)의 규제 신설·강화 건수가 많았다.

늘어난 규제들 가운데서도 퇴직 공무원의 낙하산 통로용으로 만든 규제는 가장 질이 나쁜 규제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니, 네거티브 방식 도입이니 온갖 현란한 규제혁신 구호를 내세우고 있지만 공무원 수를 줄이는 것만큼 확실한 규제혁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