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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에서 부산까지 뚜벅뚜벅…한국판 포레스트 검프[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입력 | 2020-01-25 09:56:00


이서원 씨는 빨리 잘 걸으면 몸이 아름다워진다고 강조한다. 이서원 씨 제공.

약 15년 전 사업실패로 인한 스트레스 탓에 심각한 공황장애가 왔다. 호흡곤란에 실신하는 것은 물론 먹는 족족 다 쏟아내야 했다. 이렇게 살다 죽는 것은 아닐까. 부산에서 사업하는 분의 도움으로 당구장 쪽방에서 생활할 때 당구장을 찾은 지인들과 부산 해운대에서 울산 간절곶까지 약 38km 거리를 몇 시간에 걸어서 갈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의문에 “난 4시간 안에 갈 수 있다”고 장담한 게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직접 보여주겠다며 나섰고 무작정 걸었다. 3시간30분에 주파를 했다. 그때까지 이렇게 많이 걸어본 적이 없었지만 그냥 간절함으로 걸었다. 그러자 성취감에 더해 뭔지 모를 쾌감이 찾아왔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 이서원 씨(60)는 이 때부터 하루 50km, 연간 1만km를 걷고 있다.
“걸으면서 땀을 배출해서 인지 몸이 상쾌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에너지가 더 솟는 기분이랄까…. 먹어도 토하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걸었다.”

그는 매일 걷는다. 장거리도 자주 걷는다.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까지 560km를 7박 8일에 걸었다. 하루 평균 약 70km. 부산에서 여수 340km를 3박4일에 완보한다. 제주도 한바퀴 240km는 3일이면 돈다. 요즘 평균 시속 8, 9km로 걷지만 한창 땐 시속 12km로 걷기도 했다. 일반인들의 경우 걷는 것과 달리는 것의 경계가 시속 7km인데 가능한 일일까.

“가능하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오금을 뒤로 바짝 당기며 빠르게 교차해주면 속도가 올라간다. 경보선수들은 걸을 때 한발이 항상 땅에 닿아야 해 발을 쭉 펴고 뒤꿈치부터 닿지만 그냥 편한한 자세로 오금을 뒤로 당기며 양다리를 빠르게 교차하면 빠르게 걸을 수 있다.”

이 씨는 평소 10~20km 거리는 걸어 다닌다. 걸으면서 몸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방이 완전히 빠지고 근육에 각이 생겼다. 벗어서 보여줄 수는 없지만 친구들과 사우나를 가면 군살 하나 없어 ‘이소룡 닮았다’며 데이비드 리란 미국 이름을 붙여줬다. 오금을 끝까지 밀어주면서 빠르게 걸으면 대퇴 이두근과 사두근이 크게 발달한다. 걷기는 전신 운동이라 빨리 잘 걸으면 몸이 정말 아름다워진다.”

하지만 이 씨가 강조하는 것은 걷기를 통한 심혈관계의 건강이다.

“천천히 4, 5시간 걸으면 기본 체력은 유지할 수 있지만 체력이 업그레이드되지는 않는다. 빠르게 걸어야 한다.”

이서원 씨가 자신의 각진 하체 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그는 ‘스피드 워킹’ 전도사다. 경사도 3~5도 정도 되는 오르막을 짧은 시간에 땀을 흘리면서 걸어야 운동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이 4, 5시간 걸을 수 없으니 짧고 굵게 하는 게 좋단다.

“빠르게 걷기가 쉽지는 않다. 사람들은 힘들면 하기 싫어한다. 그럴 땐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 리듬에 맞춰 걸으면 도움이 된다. 빨리 걷는 것을 지속 할 때 에너지 대사가 지방을 태우는 것에서 글리코겐(탄수화물)을 태우는 임계점이 높아진다. 그럼 운동효과가 배가 된다.”

이 씨는 약 15년을 걸으며 자신만의 걷기 철학을 확립했다.

“우리 몸에는 3개의 펌프가 있다. 첫 번째가 심장, 두 번째가 관절과 근육 펌프, 세 번째가 횡경막 펌프다.”

그에 따르면 이 펌프들이 혈액 순환을 돕는다고 했다. 혈액을 펌프질하는 심장이야 이해가 가지만 근육과 관절 펌프, 횡경막 펌프도 혈액 순환을 도울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펌프가 관절과 근육 펌프다. 관절과 근육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 빨리 걸으면 근육이 수축과 이완으로 혈액을 더 빨리 순환시킨다.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이렇게 빨리 걸어서 심폐 기능이 좋아지면 횡경막도 발달한다. 횡경막이 발달하면 수면 중 호흡할 때 더 쉽게 혈액을 펌프질 하는 역할을 한다. 맥박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 씨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걸어야 하는데 빨리 걸어야 효과가 크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씨의 이런 논리는 운동생리학적 이론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마라톤 선수들이 운동성 서맥(장거리 운동을 많이 하면 1분당 맥박수가 떨어지는 현상)이 오듯 빠르게 걷기도 운동성 서맥이 온다.

이 씨는 걸으면 온갖 스트레스에 버틸 수 있고 각종 성인병은 물론 암까지 예방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빠르게 걷기로 땀을 흘리면 니코틴, 중금속 등 우리 몸을 해롭게 하는 물질도 체외로 배출된다. 무엇보다 건강이 좋아지고 건강이 좋아지면 정신도 맑아진다. 병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매일 부산 해운대 장산을 걷는 그를 영국 공영방송 BBC가 지난해 9월 ‘전직 사업가 걷기에 빠졌다’는 제목으로 조명했다. ‘한국판 포레스트 검프’가 따로 없었다. 포레스트 검프는 1994년 나온 미국 영화로 지적장애인이 매일 걸으며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보여준다는 내용이다. 이 씨는 걷기로 공황장애를 극복해 건강한 삶을 살고 있고 ‘걷기 전도사’로 걷기를 전파하고 있다. 그는 부산 해운대구 행복학교, 부산 연제구청, 서울시의회 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스피드 워킹’을 강연하고 있다.

이서원 씨의 맨 몸. 이서원 씨 제공.

매년 한번씩 한번에 500~1000km를 걷는 그는 지난해 전남 목포에서 출발해 광주 전주 남원 구례 하동까지 1000km를 15일에 걸쳐 완보했다.

“일부에서 ‘나 자신을 너무 혹사시키는 것 아니냐’라고 한다. 아니다. 근육운동도 하고 영양학에 따른 식사를 하며 과학적으로 걷는다. 난 걸을 때 가장 행복하다. 걸으면 건강한 몸과 정신을 얻는다. 단 바른 자세로 빨리 걸어야 한다.”

그는 향후 목표에 대해 “전 세계 멋진 도시들을 걷는 게 앞으로의 꿈이며 그 도시 사람들에게도 걷기가 주는 효과와 바르게 걷기를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