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일본군의 엄호 전투기들은 저고도로 공격하는 미군 뇌격기 편대를 잡기 위해 저공에 내려와 있었다. 당시 전투기는 상승력에 한계가 있어서 고공에서 내리꽂히는 급강하 폭격기를 저지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순간 일본 항모 갑판은 어뢰를 장착하고 연료를 만재한 함재기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이륙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15분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사를 따라가 보면 이것 말고도 수많은 우연적 사건이 있다. 그중 한 개의 우연만 없었더라도 승부가 바뀌었을 것이고, 태평양 전쟁은 어디로 흘러갔을지 모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정말 그랬을까? 기록되지 않은 우연은 더 많았을 것이다. 전쟁은 수많은 우연적 사건으로 점철되어 있다. 그중에는 불가항력적인 운도 있지만, 구조적 결함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한 우연도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필연적 우연이며, 그것을 줄이는 것이 승부의 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의 잘못을 천운 탓으로 돌린다. 권력을 잡으면 이 천운 의존증이 더 심해진다. 자기 행동의 필연적인 결과도 운 탓으로 돌리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치인은 입버릇처럼 초심을 잃지 않겠다고 말한다. 알고 보면 그 초심이 잘못의 근원인데 말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니 항모도 가라앉힐 만큼 우연과 남 탓만 쌓여가는 중이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