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는 북한 왕조의 ‘원조 공주’였다. 지금의 김여정 못지않은 힘이 있었다. 그건 김정일이 1970년대 자신의 권력 승계를 정당화하기 위해 ‘백두혈통론’을 만들어내면서 파생된 결과다. 김일성의 자손이 아니면 당과 혁명의 명맥을 이어나갈 수 없으니, 누가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를까. 북한 왕가의 공주인 김경희는 당 경공업부장 등 각종 정치적 역할을 맡아가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권력을 물려받은 초기에만 해도 김경희와 장성택의 권력은 영원할 것 같았다. 위기의 순간에는 혈연관계 말고는 믿을 수 있는 세력이 많지 않다. 군부와 관료 조직을 경계하고, 이들로부터 권력을 지켜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고모와 고모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잠재적 위협인 이복형 김정남을 뒷바라지하는 데다, 지나치게 권력을 과시하는 장성택을 그대로 두면 장차 더 큰 위협이 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숙청설, 사망설이 끊이지 않던 김경희가 6년여 만에 공개석상에 등장했다. 용서와 복귀의 메시지는 아닐 것이다. 주민들 사이에서 장성택 얘기가 다시 거론될 수 있다는 부담을 무릅쓰고 김경희의 모습을 공개한 것은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령에 건강 악화 등으로 오래 살기 어려울 것에 대비해 자신의 숙청과는 무관하다며 책임을 덜어내기 위한 선전술일 것이다. 오히려 북한 최고 권력자의 주변에서 그나마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