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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없었지만 모두를 스타로… ‘학범슨’의 원팀 만들기

입력 | 2020-01-28 03:00:00

김학범호, 사우디도 꺾고 첫 우승
연장서 장신 수비수 정태욱 결승골… 필드 모든 포지션 6명이 10골 기록
5경기 풀타임 MF 원두재 MVP
과감한 로테이션 돋보인 김 감독… 아시아경기 이어 ‘우승 청부사’로




전승 환호 한국 축구 ‘김학범호’의 선수들이 26일 태국 방콕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 23세 이하 챔피언십 결승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1-0으로 꺾고 우승한 뒤 그라운드에서 기념 촬영을 하며 기뻐하고 있다. 방콕=뉴스1

몸에 태극기를 두른 선수들은 ‘KOREA’라고 새겨진 우승컵을 들고 힙합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쩌렁쩌렁하게 “진짜 우승이다!”라고 외치던 이들은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라커룸 한편에 모였다. 장난기 가득한 이들은 김학범 감독(60)을 가운데에 앉게 한 뒤 그의 머리 위로 물을 쏟아부었다. 감독은 막내아들뻘인 제자들의 장난에 밝게 웃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도쿄 올림픽 최종 예선)에서 정상에 오른 ‘김학범호’의 흥겨운 뒤풀이였다.

한국은 26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결승에서 연장 후반 8분에 터진 수비수 정태욱(대구)의 헤딩 결승골을 앞세워 1-0으로 승리했다. 준결승에서 호주를 꺾고 9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확정했던 한국은 4회째인 이 대회에서 전승(6승)으로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해외파 이강인(발렌시아) 등의 합류 불발로 최상 전력은 아니라던 한국은 끈끈한 조직력으로 정상에 올랐다. 김 감독은 “특출한 선수가 없지만 한 발 더 뛰고 희생하는 ‘원팀 정신’으로 좋은 결과를 냈다”고 말했다.

총 10골을 터뜨린 한국은 필드 플레이어 전 포지션(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에 걸쳐 6명이 득점을 기록했다. 공격수 오세훈(상주)과 조규성(안양)이 2골씩 터뜨리며 ‘차세대 원톱’으로 떠올랐다. 상주 상무(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해 기초군사훈련을 받다 대표팀에 합류한 오세훈은 “머리를 다시 짧게 깎고 훈련소로 가야 한다. 꼭 올림픽 무대를 밟고 싶다”고 말했다.

정태욱(194cm)과 오세훈(193cm) 등 ‘장신 라인업’을 활용한 한국의 세트피스는 위력적이었다. 정태욱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금메달 멤버로 제공권 장악력이 뛰어나다. 당시 대표팀 사령탑으로 다시 한번 자신을 부른 김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정태욱과 함께 아시아경기에 출전했던 송범근(전북)은 베스트 골키퍼상을 수상했다.

8강전에서 왼발 프리킥 결승골을 넣은 미드필더 이동경(울산)과 4강전 결승골의 주인공 김대원(대구),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상대 공격을 차단한 수비형 미드필더 원두재(울산) 등은 장차 A대표팀의 핵심자원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5경기에서 풀타임 활약하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원두재는 “23명 모두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노력했다. 모두가 간절했기에 이뤄낸 우승”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아시아경기에 이어 다시 ‘우승 청부사’로 우뚝 섰다. 아시아경기 당시 ‘인맥 논란’에도 뚝심 있게 와일드카드로 황의조(당시 9골)를 뽑아 성공을 거둔 김 감독은 이번에도 유망주를 대거 발굴하는 탁월한 안목을 과시했다.

26일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정태욱(왼쪽)과 포옹하고 있는 김학범 감독. 방콕=뉴스1

지략가인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이끌었던 명장 알렉스 퍼거슨에 빗대 ‘학범슨’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숙소에서 먹여주고 옷(유니폼)도 주기에’ 운동을 시작했다는 그는 은퇴 후 국민은행 퇴계로지점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며 ‘예금 모집 실적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선수 시절 태극마크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모교 명지대에서 박사학위(운동생리학·2006년 취득)를 따 축구계에서는 드물게 ‘박사 지도자’ 타이틀을 달았다. 사비를 털어 남미와 유럽에서 선진 축구를 배우는 열정을 보였다.

AFC는 “한국은 영리한 로테이션으로 우승했다”고 평가했다. 김 감독은 선발 멤버에 최대 8명의 변화(8강)를 주는 등 매 경기 과감한 로테이션으로 체력 안배에 성공하며 상대의 전력 분석을 무력화시켰다. 경기 도중 불호령을 내리는 ‘호랑이’ 사령탑이면서도 선수들과 턱걸이 내기를 하는 등 아버지처럼 자상한 면모도 보였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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