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사찰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
원당암을 둘러보는 해인사 방장 원각 스님. 뒤편에 은사 혜암 스님의 가르침으로 잘 알려진 ‘공부하다 죽어라’라고 새긴 비가 보인다. 원각 스님은 “은사의 가르침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목소리로 마음속에 남아 있다”며 “출가자의 공부나 세상 사람들의 삶에서 죽을힘을 다하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원당암 제공
―‘공부하다 죽어라’, 젊은 시절 접했을 때와 지금의 새김은 어떻습니까.
“수십 년 전이나 지금 모두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죽을힘 다해 공부해라, 정성 쏟아 참선해라. 사중득활(死中得活), 참으로 죽으면 살길이 열립니다. 모든 걸 버리면 길이 보인다는 게 핵심이지요. 온갖 것에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통합니다.”
“지난해부터 은사의 수행처를 답사해 왔습니다. 이전 극락암 행사에는 800여 명이 왔습니다. 스님의 법어를 쉽게 풀어 쓴 책도 출간합니다. BTN불교TV에서 부처님오신날 무렵 은사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하고 4월 14일에는 종정 스님을 모시고 탄신기념법회를 엽니다. 4월 한 달간 해인사 성보박물관에서 유품 전시회도 합니다.”
―은사와의 일화를 들려주신다면….
“1966년 대학 입시를 준비하다 출가를 결심했는데 저를 받아주실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중노릇 잘 못하면 상좌(제자)를 잘못 가르친 스승도 같이 지옥에 떨어진다. 그러니 중노릇 잘하라’고 하시더군요.”
―혜암 스님은 장좌불와(長坐不臥)로 유명했는데요.
“사람이니 어쩔 수 없어 스님도 가끔 고개를 떨구셨죠. 조는 게 아니고 경책(警策)하러 앞에 서면 자세를 잡으시곤 했어요. 공부하려고 애쓰는 게 몸에 배어 있었죠.”
―스님도 함께 수행하셨나요.
“중봉암 큰방에서 같이 기거했는데 둘이서도 철저하게 수행했어요. 저는 장좌불와는 못 하고 참선 공부 뒤 윗목에서 잤죠.(웃음)”
“원당암에는 용맹정진 가풍이 50년 넘게 이어집니다. 선원을 찾는 신도들 공부 열기가 스님들 못지않습니다. 안거 무렵에는 전국에서 200명가량 참여합니다.”
―스님은 어떤 화두를 받으셨나요.
“성철 스님께 3000배 하고 ‘마삼근(麻三斤)’ 화두를 받았는데 제게 잘 안 맞았어요. 그래서 ‘시심마(是甚마)’로 바꾸었죠.”
―신도들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당나라 마조 스님 제자인 혜해(慧海) 스님의 ‘돈오입도요문론’에 ‘인욕제일도 선수제아인 사래무소수 즉진보리신(忍辱第一道 先須除我人 事來無所受 卽眞菩提身)’이라 했습니다. 인욕, 참는 것이 제일가는 도라, 사바세계는 참지 않고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먼저 ‘나다 너다’ 하는 상대에서 벗어난 본래의 마음 바탕에서 지혜롭게 생활하면 일이 와도 받는 바가 없어서 곧 부처입니다. 임제 선사는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를 가든지 스스로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의 세계라고 했습니다.”
―출가자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그것이 행(行)으로 모범이 되도록 노력해야죠.”
―우리 사회의 심각한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상생해야 하는데 너는 죽고 나는 살자고 합니다. 부처님의 중도(中道)는 이것저것의 중간이 아니라 이것저것 모두 내려놓고 받아들인다는 의미죠. 그럼 개인이나 나라, 세계 모두 살길이 나옵니다.”
―지금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입니까.
“큰 정치를 해야죠. 진보와 보수는 내가 쓰는 도구인데, 그 도구에 휘둘려서는 소통할 수 없고 주인도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리더들은 ‘동체대비(同體大悲·천지중생이 나와 한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킴)’ 관점에서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합천=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