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의 반열에 올라서는 한류… 역주행 막으려면 투명한 룰 필요
서정보 문화부장
국내에선 설이나 추석 연휴 때 콘텐츠를 소비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후배 한 명도 이번 설 연휴에 넷플릭스 드라마 정주행이 목표라고 했다. 꼰대 같을까봐 어떤 드라마냐고 묻진 않았지만 그는 “넷플릭스만 봐도 충분히 재미있다”고 말했다.
우선 TV 앞에 앉질 않는다. 지상파에선 설 연휴마다 감초처럼 들어갔던 예능 파일럿 프로그램이 거의 자취를 감췄고 명절 예능으로 꼽히던 MBC ‘아이돌 스타 선수권대회’는 3%대의 저조한 시청률을 보였다. 아예 정주행 드라마를 편성표에 넣기도 했다. KBS는 인기 드라마였던 ‘동백꽃 필 무렵’을 연이어 볼 수 있게 편성했다. 물론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최근 한류는 세계 문화에서 정주행하며 주류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오르고, BTS가 그래미상 시상식 무대에서 처음 공연하는 경사가 잇따르고 있다. 사극 드라마 ‘킹덤’이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어 속편인 ‘킹덤2’가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중국의 엔터테인먼트 굴기나 넷플릭스의 국내시장 잠식을 염두에 두면 한류가 꽃길만 정주행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불거진 오디션 프로그램의 순위 조작이나 음원 사재기 의혹은 역주행의 전조처럼 느껴질 정도다. 국내 정상급 아이돌 그룹을 보유한 기획사의 관계자는 “많은 팬을 보유한 그룹이 신곡을 내놔도 1등 하기가 어려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팀원들이 몇 달 동안 심혈을 기울여 연습하고 준비한 결과가 고작 이 정도라는 점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창작 의지가 꺾인다는 것이었다.
한때 가요계에서 역주행은 좋은 뜻으로도 쓰였다. 대중이 미처 알아채지 못한 좋은 노래나 작품이 재발견돼 인기를 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뜬금없이 순위에 올라 음원 사재기 의혹을 받는 노래를 가리키기도 한다. 게임의 규칙이 이상하게 만들어지면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가요계의 경우 굳이 실시간 차트라는 경쟁을 시키지 말고 빅데이터에 기반한 음원 추천으로 가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한류가 정주행에서 역주행으로 일탈하지 않으려면 지금까지의 작은 성공에 자만하지 말고 K팝에서부터 불거진 역주행의 경고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