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자신의 소신을 지킬 것인가, 남들이 살아가고 행동하는 식을 따를 것인가. 이 역시 망설임의 대상이 됩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안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일을, 이런저런 이유로 망설이며 살아갑니다.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영리하게도 ‘소신 따로, 행동 따로’를 삶의 전략으로 선택합니다. 사회적 공정의 차원을 논하지 않는다면 개인의 갈등 관리 차원에서는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일 수 있겠습니다만.
‘망설임’은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결정하지 못함’입니다. 정신분석적 용어로는 ‘양가감정(兩價感情)’이라고 합니다. 같은 일, 사람, 대상에게 두 가지 상반되는 감정을 느끼는 상태를 말합니다. 망설임이든 양가감정이든 뒤집어보면 상반되는 두 힘이 충돌하면서 마음에 흙먼지를 일으켜서 제대로 못 보도록 막고 있는 겁니다.
망설임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진단이 중요합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빌려 설명해 보겠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망설임이 쓰고 등장하는 ‘신중함의 가면’을 과감하게 벗겨야 합니다. 사려 깊고 신중해 보이지만 뒤집어보면 신중함이 때로는 망설임의 보호막임을 우리 모두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좀 더 깊게 분석하면 이렇습니다.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해야만 하는 일을 망설이고 있다면 일단 ‘마음속 웃어른’인 초자아(超自我)가 개입한 겁니다. 자아(自我)가 소망, 초자아, 현실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해야 하지만 허약하거나 정지돼 있는 상황입니다. 망설임은 부족하거나 방전된 자아 활력의 문제입니다.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그 뒤에도 계속 망설이고만 있다면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비어 있는, 골다공증 같은 자신의 부족한 능력이 세상에 알려질 것이 겁나서 주저하고 있는 겁니다. 마치 허물어진 집을 고치겠다고 어설프게 나선 목수와 같습니다. 필요한 연장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목수의 정체성은 공사 현장을 혼돈으로 빠뜨립니다.
망설이는 사람의 마음은 이미 스스로 정해 놓은 틀이 지배합니다. 틀을 벗어나면 위험할 것이라는 근심으로 차 있습니다. 결정을 계속 미루면, 결국 난처해집니다. 난처해지면 마음이 혼란스러워서 판단력이 떨어집니다. 일이 풀리는 선순환이 아닌, 일이 더욱 꼬이는 악순환으로 끌려들어 갑니다.
망설임을 둘러싼 갑옷은 불확실성입니다. 불확실성 중에서도 제일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현실 여건이 아니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불확실성입니다. 불확실성을 극복하고 생각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옮기는 방법을 하나만 든다면? 망설임을 이기는 적극성은 놀랍게도 틀에 박힌, 일상의 작은 힘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망설임의 대상을 틀에 박힌 일상의 일로 조금씩 모습을 바꾸어 시작하고 차차 쌓아나가면 망설일 필요가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치 양치질이나 세수하기가 일관성 있는 일상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자아의 행동력, 실천력을 서서히 배양할 수 있다면 효과적입니다. 말은 쉽고 이루기는 어렵습니다만. 소소하더라도 반복 실천이 필요합니다. 올해 어떤 일을 계획하셨나요? 신중함을 내세워 망설이고만 계시나요? 일단 시동을 걸고 움직인 후에 더 생각하실 건가요? 벌써 첫 달이 훅 지나고 있습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