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정치를 취미처럼 즐기는 ‘정치애호가(Political hobbyist)’ 집단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시사 이슈와 과거 게이트는 줄줄이 꿰고 있지만 단체를 조직하고 원하는 가치를 실현하는 현실 정치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사진은 미국 의회 야경. 워싱턴=AP 뉴시스
이설 국제부 차장
최근 미국에서 새로운 취미집단이 주목받고 있다. 정치가 취미인 ‘정치애호가(Political hobbyist)’들이다.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이들은 강박적일 만큼 뉴스를 추종하되 중앙 정치 소식만 골라 본다. 온라인에선 강력한 연대를 자랑하지만 현실을 바꾸는 데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다. 스스로 교양 시민이라 자부하지만 실상은 허세에 빠진 온라인 슬랙티비스트(slack+activist·게으른 행동주의자)에 가깝다.
이들은 퇴근 후 운동이나 독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온라인 세상을 분주하게 누빈다. 주요 정치인의 트위터 계정을 훑고 페이스북에서 시사 이슈를 정독한 뒤 잽싸게 유튜브를 의회 채널로 이동한다. 쿡 찌르면 툭 하고 대답이 나올 정도로 이슈를 섭렵했다 싶으면 가족과 지인을 불러 토론(사실상 불평)을 시작한다. “요즘 워싱턴은 정말 엉망이야.”
시다 스코치폴 하버드대 교수는 정치애호가들이 등장한 배경으로 고학력자 증가를 꼽았다. “대학 졸업장은 과거에 비해 흔해졌다. 충분히 똑똑하지만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들은 정치를 게임처럼 즐긴다. 지역 정치에 책임감을 느끼던 지식인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됐다.”
미국 민주당이 지나온 길에서 뿌리를 찾기도 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950년대 미국 주요 도시에는 민주당의 지역 클럽이 유행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거대 담론을 논했다. 오늘날 정치애호가들처럼 지역 클럽도 취업, 주거 같은 이슈에는 관심이 없었다.
온라인 정치놀음은 사회에 무해할까. 정치 애호는 그저 개인 차원의 시간 낭비로 봐야 할까. 에이탄 허시 터프대 정치공학과 교수는 신간 ‘정치는 권력을 위한 것이다(Politics Is for Power)’에서 “정치애호가들이 민주주의를 해친다. 나쁜 정치를 키운다”고 썼다.
“정치를 스포츠처럼 즐겨라. 그러면 정치인은 대중을 구경꾼으로 대하며 간간이 분노의 밑천만 던져주려 할 것이다. 나쁜 정치인은 무신경한 정치 소비를 먹고 자란다. 이들이 활개 치는 정치가 천박해지는 건 시간문제다.”
하지만 실천 없는 관심은 무관심에 가깝고, 무관심의 빈자리에선 어둠이 쉽게 자란다. 그 피해는 개인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정치를 게걸스럽게 소비하더라도 허무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허시 교수는 “정치적 문제에 마비됐다고 느끼면 실제 정치를 하라. SNS 친구들과 논쟁하기보다 동네 투표소에서 표를 세고 이웃을 사귀어라”라고 조언했다.
‘진짜 정치’가 생기 있는 미래를 보장한다고 정치학자들은 지적한다. 허시 교수는 원하는 내용을 얻어내기 위해 부단히 관가의 문을 두드리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이민자 케리스 마티아스를 좋은 본보기로 들었다. 그는 “마티아스는 지역 라티노연합회 회장으로 시청, 경찰청, 교육청 문을 부지런히 노크한다. 조직을 만들고 자신과 이웃을 위한 비전을 실행한다”며 “이해관계를 앞세우는 정치 참여가 점잖지 못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다. 마티아스는 훌륭한 정치활동가”라고 말했다.
이설 국제부 차장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