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렴치한 검찰 물갈이 인사 이어 최강욱 기소에 감찰로 압박하고 향후 공수처 수사로 보복 협박 親文 실세들 처벌 점점 어려워져… 사악한 ‘2020 체제’ 시작된 듯
송평인 논설위원
정권이 진짜 걱정하고 있는 것은 유재수 비리 의혹과 울산시장 선거공작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을 거쳐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문재인 대통령에 이르는 상황이다.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 김경수 경남지사, 송철호 울산시장도 걸려 있다. 시험 가동의 결과는 100% 만족스러운 게 아니어서 감찰 운운하는 협박이 나왔겠지만 윤 총장 쪽도 이 지검장이 최강욱 기소안 결재를 깔아뭉개는 사보타주를 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최강욱을 기소했을 정도니 앞으로 수사가 첩첩산중이다.
백원우의 이름이 검찰 수사에서 자주 거론되자 임종석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잽싸게 사라졌다. 그러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보지 못한 파렴치한 검찰 물갈이 인사가 끝날 때쯤 다시 더불어민주당에 얼굴을 드러냈다. 손발이 잘린 윤 총장이 수사를 더 지휘해 봐야 자신에게까지는 칼날이 미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 듯하다. 임종석의 웃음에서 바야흐로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하지 못하는 계급이 태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에 대해 누구를 수사하고, 누구를 수사하지 말지를 결정할 뿐 아니라 고위공직자 중 검사와 판사에 대해서는 수사할 권한을 넘어 기소할 권한까지 갖고 있다. 공수처가 그 존재를 각인시키는 길은 우선적으로 검·판사를 수사해 기소까지 하는 것이다. 정권의 뜻을 거스른 수사를 한 검사들이 공수처의 제1호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최강욱의 말은 검찰 물갈이로도 모자라 검사들을 향해 조심하라는 협박장을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공수처의 제2호 수사 대상은 판사들이 될 수 있다. 김경수 항소심 재판부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2차례나 선고를 연기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유재수 감찰 무마 혐의가 죄질이 나쁨에도 부인 정경심 씨가 구속돼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는데 정경심 재판부는 정 씨의 보석 석방을 고려하고 있다. 판사들도 굳이 정권에 밉보이면서까지 정의를 관철하려 하지 않는다. 김경수 재판이야 허익범 특검이 상대하고 있지만 조국 정경심 최강욱 재판에서 물갈이된 검찰이 공소 유지나 제대로 할지 의문이다.
조국과 그 가족의 비리가 터져 나올 때 그들을 신성(神性) 가족처럼 취급하는 지지자들의 해괴한 정신 상태를 경험한 바 있다. 그런 정신 상태로부터 귀태 같은 공수처가 태어났다. 고위공직자 수사를 독점하게 된 공수처는 정권의 반대자들은 가혹하게 다루면서 다른 한편으로 당성(黨性)만 좋으면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노멘클라투라를 만드는 통로가 될 수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은 경찰권의 충분한 분산이 이뤄지면 대체로 법치의 모범국가들을 따라가는 개혁이다. 김학의 불기소 같은 일은 이번 조정으로 방지할 수 있고 오히려 경찰판 김학의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반면 공수처는 유례를 찾기 힘든 것이다. 남들이 다 하는 제도에서나 잘할 생각을 해야 한다. 형사사법제도같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에서는 더욱 그렇다. 모자란 것들이 꼭 검증되지 않은 새것으로 하면 잘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