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 결정이라고 다 옳지는 않아… ‘묻고 더블로 가!’의 종착지는?
김광현 논설위원
바야흐로 누구나 한 표를 행사하는 선거 시즌이다. 정당과 후보자들이 다양한 공약을 내걸고 표심을 유혹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을 만한 약속이 가장 합리적인 정책일까.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운 공약도 더러 있다. 예컨대 만 20세 청년 전원에게 3000만 원씩, 부모가 없는 청년에게는 최대 5000만 원씩 정부가 지급하겠다는 ‘청년기초자산제’는 여당인지 야당인지 분간이 안 가는 정당의 총선 1호 공약이다. 화끈한 만큼 뒷감당이 불감당인 약속이다.
이뿐만 아니다. 농어민수당, 노인수당, 아동수당 등 이미 있는 여러 이름의 수당을 이중 삼중으로 더 올려주겠다는 공약이 여야 가릴 것 없이 난무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수당(手當)’을 ‘정해진 봉급 이외에 따로 주는 보수’라고 풀이하고 있다. 앞으로는 ‘정부로부터 그저 받는 돈’이란 뜻이 추가되게 생겼다.
조세 저항 없이 생색내는 가장 좋은 방법이 빚 끌어다 현금 봉투 뿌리는 일이다. 그래서 국가 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추세다. 그 폐해는 반드시 누군가에게 돌아갈 것이다. 특히 빚 보따리가 다음 세대의 어깨를 짓누를 게 뻔하다.
그래서인지 최후의 선택이 늘고 있다. ‘발로 하는 투표’, 즉 이민 열풍과 기업 탈출이다. 최근 여기저기서 거의 매주 열리는 이민설명회는 예약 없이는 입장도 안 될 정도로 성황이다. 외교부 통계로도 작년 해외 이주 신청자가 1년 새 5배 가까이 늘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에 갈 형편이 안 되면 말레이시아라도 가겠다면서 동남아 이민 문의가 폭주한다고 한다.
기업도 떠난다. 기업들이 나라 밖으로 싸들고 나간 돈, 즉 해외직접투자(FDI) 금액이 작년 3분기까지 444억5000만 달러로 전년에 비해 21.6% 증가했다. 1년 총액으로 500억 달러가 넘을 것이 확실시된다.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사업하겠다고 들어온 돈은 작년 3분기까지 134억85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9.8% 줄었다.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일자리는 누가 만들고 세금은 누가 낼 것인가.
오랜 경험을 가진 경제 관료들은 ‘이건 아닌데’ 싶지만 겉으로는 입도 벙긋 안 하는 게 정부세종청사 분위기라고 한다. 장차관에게 개인 집도 팔라 말라 하는 판에 청와대에 좌표 한번 잘못 찍혔다간 그나마 모기만 한 목소리도 못 내고 사라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